'왕의 산' 넘어야 한국도 이긴다…'60조 잭팟' 둘러싼 비밀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1-29 08:00
수정 2026-01-29 08:12

노르웨이 방산기업 콩스버그가 '북극해 안보의 맹주'라는 상징성을 앞세워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을 전면 지원하며 유럽·북미 방산 질서 재편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극해와 그린란드 인근 해역에 대한 이해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북방 전선에서 축적한 운용 경험을 캐나다 정부에 강조하고 있다.콩스버그는 어떤 기업?29일 방산테크 업계에 따르면 콩스버그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 안보, 해양 기술, 우주·항공, 방산 디지털 시스템을 축으로 진화해온 '북극해 안보의 맹주'로 꼽힌다. 북극해와 바렌츠해를 마주한 노르웨이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성장한 이 회사는 최근 유럽과 북미 질서 재편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콩스버그의 뿌리는 18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르웨이 정부가 국방 자립을 위해 설립한 국영 무기공장 '콩스버그 보펜파브리크'가 출발점이다. 회사 영문명인 'Kongsberg'는 노르웨이어로 '왕의 산(King’s Mountain)'을 뜻한다. 국왕을 상징하는 이름처럼 콩스버그는 태생부터 국가 안보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콩스버그의 핵심은 방위·항공우주 부문이다. 이 부문은 노르웨이를 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전략적 의미를 갖는 무기체계를 다수 보유했다. 대표적인 것이 해상 타격용 '해군타격미사일(NSM)'과 F-35 전투기 탑재용 '합동타격미사일(JSM)'이다. 이 미사일들은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과 스텔스성을 결합한 무기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동맹국이 실전에 배치했다. 콩스버그가 개발한 지상 방공체계인 '나삼스(NASAMS)'도 NATO 회원국 다수가 운용 중이다.

해양 센서, 무인 수중체계, 극지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감시·통제 시스템은 이 회사의 또 다른 축이다. 유럽우주국(ESA)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발사체·위성 관련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등 우주 분야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방산, 해양, 우주를 하나의 안보 포트폴리오로 묶어 운용하는 구조는 콩스버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게이르 호이 최고경영자(CEO)는 기술 중심 경영과 동맹국 시장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 왔다. 2024년 기준 콩스버그의 연매출은 약 489억 노르웨이크로네(NOK)에 달하며 전 세계 직원 수는 1만4000여명이다.

최근 콩스버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과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CPSP) 수주전에서 경쟁하고 있는 TKMS와의 협력 때문이다. 양사는 잠수함과 해군 플랫폼, 전투체계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러시아의 군사 위협과 북극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노르웨이와 독일이 북유럽·북대서양 해양 안보를 공동으로 관리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콩스버그는 미사일·전투체계, TKMS는 잠수함·플랫폼에 강점을 갖고 있어 상호 보완성이 뚜렷하다.

콩스버그의 진짜 경쟁력은 북극해 안보 환경에서 드러난다. 노르웨이는 NATO 북방 전선의 핵심 국가이자 러시아와 해상 경계를 맞댄 국가다. 콩스버그는 이 환경에서 축적한 고위도·극지 작전 경험을 기술로 체계화해 왔다. 혹한·빙해 조건에서도 작동하는 감시센서,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춘 해상 미사일, 위성과 연계된 통합 지휘통제 체계는 북극해에서 실질적인 억지력을 제공한다. 무기를 파는 기업을 넘어 '북극권 작전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산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콩스버그, '북극 동맹' 앞세워 TKMS 지원 사격CPSP는 기존 노후 잠수함을 대체할 8~12척 규모의 잠수함 도입 프로젝트로, 최대 사업 규모가 약 600억 캐나다달러(약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업은 단순 수출 계약을 넘어 유지보수·정비·기술이전·현지 산업 생태계 구축까지 포함하는 장기 협력 성격을 띈다. 콩스버그는 수십 년간 캐나다 시장에서 활동해 온 경험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다. 회사는 캐나다 해군의 이지스 시스템 탑재 신형 구축함인 리버급 구축함에 핵심 부품과 해군타격미사일을 공급해오며 현지 운용 경험을 축적했다.

이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콩스버그는 TKMS의 잠수함 체계가 북극권과 북대서양 작전환경에 가장 부합하고 있다고 지원 사격에 나섰다. 특히 독일이 NATO 동맹 내 공동 표준과 상호운용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북극 해양 환경 대응 능력'은 캐나다 정부가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운영·정비 능력 평가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콩스버그가 TKMS와 손잡고 CPSP에서 북극해와 그린란드 인근 해역에 대한 이해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한국 입장에선 약점으로 꼽힌다. 북극권 국가로서 축적한 혹한·빙해 운용 경험과 NATO 북방 전선에서의 실전적 감각은 캐나다 정부가 중시하는 평가 요소와 맞닿아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콩스버그가 지리·환경 이해를 강조한다면 한국은 센서·제어·전투체계 측면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저온 환경에서 신뢰성을 유지하는 전자·전기 시스템, 결빙 조건에서의 소음 관리, 장기 잠항을 전제로 한 에너지 관리 기술 등은 지리적 경험보다 공학적 설계 역량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화오션이 보유한 잠수함 건조·통합 경험을 '극지형 시스템 엔지니어링'이라는 언어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현장에서 얘기가 나온다.

아울러 북극 안보를 '군사'가 아닌 '복합 안보'로 재정의해 설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캐나다가 직면한 북극 과제는 군사 충돌만이 아니다"라며 "북극 항로 관리, 해저 케이블 보호, 자원·에너지 인프라 감시, 재난 대응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한국은 조선·해양플랜트·에너지·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잠수함을 북극 해양 감시 플랫폼의 일부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말했다."승부처는 '유지보수'...수십 년간 '운용 안정성' 보여줘야"외교가에선 캐나다에서 요구하는 현지화 전략도 '단순 생산'이 아니라 ‘운용 생태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콩스버그가 캐나다 내 훈련 시뮬레이터 생산을 검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단순 부품 생산을 넘어 캐나다 해군 승조원 훈련체계, 디지털 트윈 기반 운용·정비(MRO), 수명주기 관리까지 포함하는 통합 운용 생태계 구축을 제안해야 한다.

캐나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잠수함 '구매'가 아니라 수십 년간의 '운용 안정성'이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14일 한화오션과 TKMS에 발송한 비공개 입찰 안내서를 통해 이번 사업의 평가 배점을 유지보수 50%, 잠수함 성능 20%, 경제적 이익 15%, 가격 15%로 구성했다. 잠수함의 성능이나 가격보다 도입 후 30년 이상 운용하며 발생하는 유지보수와 후속 군수지원 능력이 낙점의 결정적 변수임을 의미한다.

캐나다 정부가 입찰 평가의 절반을 유지보수 항목에 배정한 배경에는 현재 운용 중인 빅토리아급 잠수함의 잦은 고장과 부품 수급 난항으로 겪은 전력 공백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독일·노르웨이 진영은 서로 상반된 유지보수 해법을 제시하며 표심 잡기에 나섰다. 콩스버그는 NATO 회원국 간 긴밀한 군수지원 네트워크를 활용해 부품을 공유하고 정비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럽의 군수 라인을 캐나다로 확장해 안정적인 부품 공급망을 보장하겠다는 의도다.

반면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한국은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캐나다 내 완결형 MRO 체계' 구축이라는 승부수를 띄울 필요가 있다. 단순히 부품을 한국에서 공수하는 차원을 넘어 캐나다 현지 파트너사인 '밥콕 캐나다' 등에 핵심 정비 기술을 대거 이전해 캐나다 안에서 자체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는 유럽의 잠수함 운용 클럽에 가입해 '안정성'을 택할지, 아니면 한국의 기술 이전을 통해 자국 내 독자적인 '정비 주권'을 확보할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