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공장이 일상인 환경에서 크고 자랐다.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바늘이 원단을 박아내는 리듬이 공장 안을 메웠고, 직원들의 손끝은 원단의 방향과 흐름을 잡아주며 공정을 이어갔다. 그 손맛은 자동화가 확대되던 시기에도 쉽게 대체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소리들은 단순한 기계적 움직임이 아니라 숙련과 집중,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결국 패션 제조에서 기술의 진짜 차이는 그런 손끝에서 나왔다. 그 장면과 소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유럽의 고급 시계 산업은 지금도 사람이 만든 흔적을 품질의 증거로 삼는다. 인증된 중고 제품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고, 긴 대기 시간조차 브랜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소비자는 단순한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숙련, 완성도, 축적된 시간을 산다.
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럭셔리 업체들은 지금도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특정 공정을 기계에 넘기지 않는다. 한 명의 제작자가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 완성도를 기준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 그리고 공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브랜드 정체성을 지탱한다. 그들의 경쟁력은 손기술을 갖춘 인력에서 비롯된다.
최근 한국패션협회의 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된다. 국내 제조 인력 상당수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시니어로, 그들의 감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데이터에 가깝다.
반면 기술은 제조 공정을 더 단순하고 다루기 쉽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제조업 현장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은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실행 주체인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패션 제조 공정에서는 디자인 도식화, 패턴 생성, 표준원가 계산, 2D·3D 가상 피팅과 같은 지식·창작 업무에 이미 지능형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올해 CES에서도 휴머노이드의 산업 현장 투입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반복 공정을 AI 기반 로봇이 함께 수행하는 모델이 곧 본격화할 조짐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제조 현장에서 AI가 판단·생성까지 수행하는 주체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미세한 감각과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공정의 기반을 깔아준다면 마지막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의 손이다. 제품의 진정한 가치는 기능적 기술 위에 더해진 인간의 해석과 손길에서 나온다.
패션 비즈니스는 감성과 디자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품질, 납기, 위험 관리, 지속 가능성이 함께 충족되어야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다. 한국 패션의 진짜 경쟁력은 결국 사람의 기술과 시스템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AI가 제조 현장에서 역할을 확대할수록 인간의 손맛과 감각은 더 뚜렷한 차별 요소가 된다. 미래의 제조 경쟁력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 기술이 그려 놓은 구조 위에 인간의 감각이 얹힐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