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발견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서가에서 집어 든 책, 길가에서 들려온 노래처럼. 그러나 이제 우리의 세계는 ‘발견’이 아니라 ‘추천’으로 채워진다. 알고리즘이 큐레이터가 된 시대, 우리는 더 풍요로워졌을까?
알고리즘이 바꾼 일상
추천 알고리즘은 이제 일상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플랫폼은 개인의 취향을 섬세하게 짚어내 맞춤형 콘텐츠를 제시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는 관심사와 관계망을 나만의 신문처럼 편집해 건넨다. 온라인 쇼핑몰과 각종 애플리케이션 또한 이용자의 선호와 행동 패턴을 기반으로 광고와 서비스를 정교하게 추천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매 순간 방대한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이 속에서 개인의 주목Attention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추천 알고리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시간을 할애할지 결정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과 원리에 따라 ‘개인화된’ 정보를 제시하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해 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문구가 유행처럼 확산된 것도 이런 불투명성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추천 알고리즘은 마치 개인 비서처럼 이용자를 대신해 세상을 큐레이션한다. 그로 인한 편의성은 있으나, 익숙한 취향과 선택의 경계를 넘어서는 우연한 조우의 즐거움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그 결과 정보의 흐름은 ‘발견’에서 ‘주입’으로 이동했으며,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처럼 예기치 못한 울림을 주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필터 버블의 역설
추천 알고리즘은 분명 이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의 다양성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각자가 자신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혀 원하는 정보와 선호하는 콘텐츠, 그리고 가치관이 비슷한 이들의 의견만 접하게 되는 것이다. 필터 버블이란 알고리즘이 개인에게 맞는 정보만 걸러내 보여주는 과정에서, 마치 거품 속에 둘러싸인 것처럼 외부의 다른 관점이나 낯선 정보와 단절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로 인해 정보의 편향과 왜곡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나아가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기도 한다.
일례로 2024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청소년이 주로 사용하는 특정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청소년에게 혐오성 콘텐츠 노출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진이 특정 관심사를 지닌 가상의 청소년 계정을 생성해 7일간 해당 소셜 미디어의 추천 콘텐츠를 관찰한 결과, 여성 혐오적 콘텐츠의 비율이 13%에서 56%로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해 사용자가 점차 극단적인 콘텐츠로 빠져드는 현상을 ‘토끼굴 효과Rabbit Hole Effect’라 부른다. 이는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전략의 하나로 부정적 감정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성향을 정교하게 활용한 결과다. 이처럼 추천 알고리즘은 일면 우리가 상이한 의견이나 가치관을 접할 기회를 축소하기도 한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양극화하고, 갈등은 한층 첨예하게 심화되는 ‘집단 극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결국 ‘편리함’이 낳은 ‘갇힘’이라는 역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빛, 긍정적 가능성
추천 알고리즘은 효율성과 몰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콘텐츠를 빠르게 찾고, 그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장점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긍정적 역할도 한다. 개인화 서비스가 형성한 새로운 시장은 이용자의 취향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은 사용자의 성향을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취향’을 하나의 시장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취향을 충족하는 콘텐츠가 가시화되고, 창작자와 소비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장이 마련됐다. 개인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과거의 콘텐츠가 다시 주목받기도 하며, 창작물의 ‘역주행’이나 창작자의 재발견이 가능해진 것도 이런 알고리즘의 긍정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과거라면 외면받았을 상품이나 창작물도 이제는 자신만의 소비자를 만나 경쟁력 있는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작자와 향유자 사이에 새로운 다리가 놓이고, 나만의 예술가를 찾아가며 취향을 더욱 심화하는 가능성 또한 열린 것이다. 이러한 추천 알고리즘의 긍정적 역할은 개인의 만족을 넘어 문화 산업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대규모 자본과 배급망을 확보한 일부 기업만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은 소규모 창작자와 신생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을 지닌다. 비주류로 여겨지던 콘텐츠와 상품이 집단적 수요를 확보하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더 나아가 지역적 한계를 넘어 글로벌 소비자와 직접 연결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취향 기반의 작은 시장이 국제적 산업으로 성장하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필터 버블을 넘어서는 길
개인 차원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학습자의 디지털 소양을 함양하는 교육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2024년 1월 제정된 ‘디지털 포용법’ 역시 전 국민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사회 차원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이윤 논리를 공동체적 책임의 논리로 전환하기 위한 규제와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유럽연합이 제정한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법은 플랫폼 기업에 알고리즘 투명성을 의무화하고, 이용자가 개인화 추천을 거부하거나 비개인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이에 따라 2024년 메타는 유럽 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에게 2시간 이내 이용 내용과 콘텐츠,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활용한 ‘덜 개인화된Less Personalized’ 광고에 노출되는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글로벌 규제 동향은 알고리즘을 단순한 이윤 추구의 도구에서 사용자 주권 중심의 도구로 이동시키려는 정책적 시도라 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편의나 이윤 추구에만 집중하지 않고,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는 역량과 시민성(디지털 시민성)을 갖추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단순한 이윤 추구의 도구로 전락할 때, 우리는 콘텐츠 과잉 소비, 정보 왜곡, 감정 조작이라는 부작용에 직면한다. 반면 사회적 책임과 사용자 권리를 고려한 설계는 알고리즘을 창조성과 연결, 몰입과 발견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알고리즘의 미래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설계할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성찰과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책무다. 그렇게 할 때 알고리즘은 우리를 가두는 장치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 될 수 있다.
글. 김아미(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나는 왜 쇼츠를 멈추지 못할까> 저자)
출처. 미래에셋증권 온라인 매거진(바로가기_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