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동산방·현대·조선화랑 등 다섯 개 화랑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화랑협회를 설립했다. ‘깜깜이’ 미술시장을 건전하고, 대중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시간이 지나며 협회 산파역인 양지·명동화랑은 문을 닫았지만, 경제·문화 성장과 함께 생겨난 화랑들이 자리를 채워나갔다. 반세기가 지나 협회는 전국 185개 화랑을 거느린 국내 대표 미술단체로 컸다. 협회가 선보인 한국 첫 아트페어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글로벌 브랜드 프리즈(Frieze)와 손잡고 ‘키아프리즈’로 몸집을 키우며 K미술이 홍콩과 견주는 아시아 허브로 자리 잡는 주춧돌이 됐다.
한국화랑협회가 설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이성훈 협회장은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연 창립 5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지난 50년간 미술을 모든 시민이 향유하는 일상이 되도록 저변을 넓혀왔다”며 “다가오는 50년을 앞두고 미술품 유통 고도화와 국제 네트워크 확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올해 9월 프리즈와 함께 열리는 키아프 서울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초대하는 등 미술을 중심으로 문화 전반의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협회는 이날 미술시장 기반 강화를 내세웠다. 당초 5년 계약으로 올해가 마지막이었던 키아프-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협력계약을 2031년까지 연장하며 세계시장에 한국미술을 선보일 창구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가운데 국내 미술시장의 깊은 불황의 골을 메우는 게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갤러리케이와 서정아트센터 등 대규모 피해액이 발생한 다단계금융(폰지)사기 혐의를 받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시장에 대한 신뢰도 크게 추락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회장은 미술품 매매 영업에 치중하거나 대관 위주 사업을 전개하는 화랑은 배제하는 등 내부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해 미술문화에 족적을 남기는 게 화랑의 본질”이라며 “전국에 1000여개 화랑이 영업 중인데, 비싼 작품을 취급하고 직원 수가 많아도 영업 등 사기 성격이 짙은 화랑을 신규나 정회원으로 받지 않기 위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미술품 물납제 등 실효성 떨어지는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물납제는 2023년 시행돼 이듬해인 2024년 1호 사례가 나왔지만, 금융재산으로 우선 상속세를 내도록 규정하는 등의 규제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술계에선 이처럼 실질적인 자산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비교해 미술품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시장 침체를 지속하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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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현금자산이 없을 경우에만 물납을 받도록 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미술품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제도권 금융에서 담보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감정을 객관화하는 것이 과제”라며 “정부가 ‘미술진흥법’ 시행을 위한 고시를 제정 중인데 제도가 현실에 맞게 연착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이날 키아프-프리즈 서울의 5년 연장을 동력 삼아 국제 미술 네트워크 확장도 지속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무엇보다 키아프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단 입장이다. 국제적 행사인 프리즈에 밀려 키아프가 아류 행사가 될 수 있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이 회장은 “키아프가 (지난 5년 간) 프리즈 수준에 걸맞게 성장했고, 세계에서 큰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키아프가 이류 시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염려가 있지만 5년 뒤엔 프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협회는 올해 키아프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초대한 연주회를 여는 등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다. 한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공연하며 큰 호응을 받았다”며 “올해 조성진의 특별무대를 위한 협의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이 회장은 올해 미술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첫 5000포인트 고지를 밟고, 코스닥도 지난 26일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등 연초 자본시장발 훈풍이 지속되면서 미술시장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장은 “자산가치가 크게 상승하면서 분산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며 “올해는 경기 회복과 함께 미술시장도 좋아질 것으로 낙관한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