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한국산 의약품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높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 관련, 업계에서는 "정치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설령 현실화해도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다만 한국 기업의 '보툴리눔 톡신'은 상호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문가 다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한국산 의약품의 상호관세를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놨던 게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지난해 양국이 맺은 관세 인하 등에 대한 무역 합의는 국회 의결을 받지 않아도 이행할 수 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미국이 굳이 한국 국회의 비준을 요구하는 건 이걸 빌미로 다른 걸 요구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고 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과 나는 2025년 7월 30일 양국에 이익이 되는 훌륭한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 내가 2025년 10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를 재확인했다"며 "한국 국회는 왜 이 협정을 승인하지 않은 것이냐"고 했다. 이어 "나는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입법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와 목재, 의약품, 기타 모든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국 내 약가를 내리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봐도 '수입 의약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최혜국 대우(MFN) 약가 체계 도입, 제약사들과의 약가 협의, 제약사·소비자 간 의약품 직거래 웹사이트 '트럼프알엑스(TrumpRx)' 개설 등을 통해 미국 내 약가를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기업이 잘 만드는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의약품의 약가를 내리는 강력한 수단인데, 여기 매기는 관세를 인상하는 건 약가 인하 방침에 역행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얘기는 다른 노림수가 있는 정치적 수사"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일본도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맺은 무역 협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다"며 "하지만 트럼프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중국과 바이오 분야 협력을 약속한 것에 대한 반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설령 진짜로 인상해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유력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에는 큰 영향을 안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미국에서 다른 기업이 기존에 지어 놓은 CDMO 공장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생산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메릴랜드주에 있는 GSK의 공장을, 셀트리온은 뉴저지주에 있는 일라이릴리의 공장을 최근 인수했다. 미국의 이들 공장에서 생산된 의약품은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대상이 아니다.
기업들도 시장의 우려를 진화하고 있다. 이날 셀트리온은 "미국 뉴저지주 생산시설을 확보함으로써 관세에 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했다"며 "이미 미국 현지에 입고된 2년치 공급 물량을 통해 관세 영향 없이 제품 판매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보툴리눔 톡신의 미국 수출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대웅제약의 '나보타', 휴젤의 '레티보' 등 두 품목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보툴리눔 톡신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신약으로 허가받았고, 전량 한국에서 생산된다. 생산량의 절반 정도가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돼 이 판로가 부정적 영향을 받으면 실적에 급감할 수 있다.
이날 휴젤은 5.25% 떨어진 27만500원에 장을 마쳤다. 대웅제약은 0.72% 올랐지만, 코스피지수 상승률(2.73%)에는 미달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