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터, 쿠닝, 로스코와 함께 했던...'전설의 갤러리스트' 퇴장

입력 2026-01-28 00:56
수정 2026-01-28 00:58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 미술계를 종횡무진 누비던 거물 갤러리스트와 아트 딜러들이 최근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아트뉴스 등 미술전문매체들은 지난 22일 뉴욕 마리안 굿맨 갤러리의 설립자 마리안 굿맨의 별세를 대서특필했다. 굿맨은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주세페 페노네 등 유럽의 현대미술 거장들을 오랫동안 전속 작가로 두며 이들을 뉴욕 예술계에 소개했다. 아트뉴스는 “굿맨은 상업적 유행에 휘둘리지 않았고, 20세기 유럽의 전위 예술과 개념 미술을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2024년 6월 한국에도 지점을 둔 글로벌 갤러리 글래드스톤의 창업자 바바라 글래드스톤(1935~2024)의 별세였다. 지난해 6월에는 파리와 뉴욕의 갤러리 르롱을 거점으로 호안 미로, 프랜시스 베이컨 등 거장들의 유산을 관리해 온 갤러리 르롱의 설립자 다니엘 르롱(1933~2025)이 9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5월에는 오스트리아의 거물 갤러리스트 존 세일러(1937~2025), 8월에는 영국 사치갤러리의 공동 설립자이자 찰스 사치의 전부인인 도리스 록하트 사치(1937~2025)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부흥기를 이끌며 영국 현대 미술의 저변을 넓힌 실질적인 기획자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2월에는 골드만삭스 파트너 출신으로 윌리엄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전후 미국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거래했던 영향력 있는 딜러 로버트 므누신(1933~2025)이 숨을 거뒀다. 스티브 므누신 전 미국 재무장관이 그의 아들이다. 같은 달 갤러리스트이자 큐레이터, 뉴욕시립예술학교 교수로서 남미 미술을 세계에 소개한 카를라 스텔백(1942~2025)이 별세했다.

이들의 부고에 미술계가 술렁이는 건, 위대한 작가 뒤엔 언제나 위대한 갤러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작가를 찾아내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고, 작품을 판매해 작가와 이익을 나눠가지는 미술상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근현대미술 걸작들 대다수가 이런 갤러리스트와 작가의 ‘합작품’이다. 시대가 급격하게 바뀔수록 이들의 역할은 더 커졌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가난한 인상주의자들을 홀로 먹여살리다시피하며 전세계에 인상주의를 알린 폴 뒤랑-뤼엘, 파블로 피카소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앙브루아즈 볼라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들의 퇴장으로 미술계가 급격한 변동을 겪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인물들이 생전부터 자신의 죽음 이후를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여러 딜러들에게 권한을 나눠주는 ‘집단 지도 체제’를 일찌감치 구축한 굿맨, 글래드스톤이 대표적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규모가 있는 글로벌 갤러리들은 설립자 한명에 의존하는 1인 기업 체제를 벗어난 지 오래”라며 “‘내가 없으면 갤러리도 없다’는 전설적인 갤러리스트들의 시대가 가고 거대 자본과 전문 경영인이 움직이는 ‘메가 갤러리’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