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9시께 서울 중구 소재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 앞에는 개점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졌다. 영하 8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약 20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외투 위에 담요를 두르고 손에는 핫팩을 쥐어가며 백화점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건물 반대편 까르띠에 매장 앞 상황도 비슷했다. 개장을 기다리는 쇼핑객 40여명이 길게 늘어섰다.
이날 대기 줄 가장 앞에 서 있던 한 중국인 관광객은 "루이비통 가방을 사려고 새벽부터 나와 8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며 "한국에서 사면 환율 차이 때문에 중국보다 40만~50만원 정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전에도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그때도 쇼핑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주요 백화점에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몰리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 영향으로 고가의 명품을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백화점의 외국인 매출은 일제히 증가세를 보였다. 실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2025년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82% 증가했으며 강남점 외국인 매출도 52%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본점의 외국인 매출도 40% 늘었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과 무역센터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약 20%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안내 요원은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 매일 아침 명품 매장 앞에 줄 서는 외국인 고객이 늘었다"며 "오늘은 오히려 적은 편이고, 많을 때는 줄이 대로변 큰길까지 이어질 정도"라고 귀띔했다.
업계는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며 외국인 소비가 명품 매출 증가를 이끄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55원을 기록했다. 한때 148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최근 소폭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난해 저점(1354원) 대비 여전히 100원 이상 높은 수준이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쇼핑하기 좋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주요 명품 브랜드의 국가별 판매가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일례로 루이비통의 인기 제품인 '네버풀 MM 가방'은 중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1만5100위안(약 316만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 정가는 280만원이다.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이 약 36만원가량(약 11%) 저렴한 셈이다. 2026년 봄·여름(SS) 시즌 신제품으로 나온 샤넬의 '미니 클래식 가방'도 중국 가격은 5만700위안(약 1062만원)이지만 국내 가격은 1008만원으로 약 5% 더 싸다.
여기에 외국인 대상으로 한 부가세 환급 서비스(택스리펀) 혜택까지 더해지면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진다. 가격대가 높은 명품일수록 환율에 따른 체감 차이로 인해 소비 유인이 더 커진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특히 중국인 소비자들 발길이 두드러진다. 최근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중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명품을 구매할 때 느껴지는 가격 이점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23일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달러당 6.9929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기준환율이 7위안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23년 5월18일 이후 처음으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국을 4번째 방문했다는 한 중국인 관광객은 "환율 때문에 한국에서 명품을 사는 게 이득이다. 같은 제품을 중국에서 사면 50만원은 더 줘야 한다"며 "날이 추워서 기다리기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