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작년 말 ‘죄는 잠 못 들게, 억울함은 남지 않게’라는 제목의 ‘검찰 보완수사 우수 사례집’을 내놨다. 수사권 박탈 위기에 처한 검찰의 몸부림이려니 했다. 그런데 ‘엄선해 실었다’는 77개 사건을 살펴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세종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렇다. 2018년 또래들로부터 집단 성폭행과 불법 촬영 협박을 당한 피해자는 6년 만에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피의자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데다, 피해자 기억이 일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주요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자칫 진실이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초동수사 부실에 주목한 검찰의 보완수사로 반전됐다. 검찰은 경찰이 간과한 핵심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고, 피의자들의 과거 범죄 이력 등을 조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주범은 구속됐고, 함께 범행한 3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범죄 발생 후 7년, 신고 접수 후 17개월 만이다. '국민' 빠진 보완수사권 논쟁보완수사권 검찰 존치 여부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완수사권이)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언급한 뒤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보완수사권 불가’라는 강경파 목소리가 컸던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다.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 등 6대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올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면 이 같은 범죄 수사권도 사라진다.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과 경찰이 전담하고, 기소는 공소청이 담당한다.
보완수사권 존치 논란은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향후 수사권을 독점하게 될 경찰과 중수청에 대한 통제 필요성에서 비롯됐다. 존치 주장의 핵심 논거는 경찰이 1차 수사한 송치사건의 오류나 미진한 부분은 새로 수사하지 않는 범위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완수사를 통해 억울한 국민에겐 ‘보호망’을, 범죄자에게는 ‘법망’을 촘촘하게 완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증오'가 개혁 동력이면 곤란완전무결한 형사사법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사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착오와 실수뿐만 아니라 고의적인 부실·지연 수사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과거 수사·기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검찰의 행태가 밉다고 해서 민생범죄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 검사의 손발을 묶어선 곤란하다. 경찰과 중수청을 예외적으로라도 견제하고 통제할 보완수사권조차 부여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결국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에게 돌아간다.
법무부 사례집 곳곳에는 검찰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절규가 담겨 있다. 무고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죄 없이 형사처벌을 받았을 사람들의 사연도 절절하다. 세종시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지난해 9월 한 세미나에 나와 “만약 모든 수사권이 경찰에게만 있고 검사가 기소 여부만 따졌다면, 저는 고통스러운 과거에 묶여 좌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보완수사권이든 보완수사요구권이든 국민 권리구제와 인권 보호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착하게 살더라도 누구든지, 언제든지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