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던지고 1시간 줄 섰다…고개 푹 숙인 2030 '진풍경' [현장+]

입력 2026-01-26 09:09
수정 2026-01-26 10:03

"죄송합니다.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민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1시간 이후에나 다시 줄을 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도파민 스테이션' 내 '기미로와 함께하는 종이접기 페스티벌' 팝업스토어. 티켓 부스 위치를 묻는 한 시민의 질문에 행사 관계자가 진땀을 흘리며 답했다. 입장을 위한 대기 시간이 아니다. 팝업스토어 출입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데만 1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1분짜리 '숏폼' 콘텐츠도 길다며 넘겨버리는 '도파민 중독' 시대지만 이곳의 관람객들은 느리고 정적인 '종이접기'를 체험하기 위해 기꺼이 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열린 종이접기 테마 팝업스토어가 빚어낸 진풍경이다.

이번 행사는 HDC아이파크몰이 구독자 10만 명을 보유한 종이접기 유튜버 '기미로'와의 협업을 통해 성사됐다. 팝업스토어 공간은 전시 존, 체험 존, 굿즈 존으로 구성됐다. 전시 존에서는 기미로의 정교한 종이접기 실물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체험 존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도면을 보며 종이접기를 통해 '손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굿즈 존에서는 종이접기 체험 키트와 아이파크몰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한정판 굿즈를 판매 중이다.◇ 스마트폰 대신 색종이... "릴스 보던 시간에 종이 접으니 힐링"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체험 존에서 펼쳐졌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앉은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여느 행사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이들의 손에 들린 건 '인증샷을 위한 스마트폰'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종이'였다. 참가자들은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도 이른바 '종이멍(종이를 접으며 뇌를 쉬게 하는 행위)'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23세 박모 씨는 "예전에는 누워서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언제부턴가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이접기는 잡생각 없이 집중하게 해준다. 아이들이 많아 민망할 줄 알았는데, 막상 종이 한 장으로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이 커서 다른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를 찾은 27세 관람객 김모 씨 역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 귀찮음을 이겨내고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이 크다"고 전했다.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의 행사답게 '팬덤'의 열기도 뜨거웠다. 현장에선 기미로가 지나갈 때마다 사진과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이 줄을 섰다. 중학생 황 모(15) 군은 "유튜브 영상으로만 보던 곤충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유튜버에게 사인도 받고, 다 같이 종이를 접으며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밝혔다.

유튜버 '기미로' 씨도 "하루 이틀 지날수록 점점 많은 분이 와주시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분이 와주실 줄 상상도 못했다"며 "기존 구독자분들은 물론이고, 종이접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까지 현장에 오셔서 작품을 보며 놀랍다고 말씀해 주시는 반응들이 가장 인상 깊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도파민 스테이션'의 역설..."차분함도 도파민이다"
아이파크몰이 '도파민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공간과 다소 이질감이 드는 '정적인' 종이접기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김기훈 HDC아이파크몰 콘텐츠개발팀 바이어는 "도파민 스테이션은 지난해 6월, 1800평 규모의 3층 공간을 리뉴얼하며 김대수 대표가 직접 작명한 이름"이라며 "역설적으로 오픈 첫 팝업은 '요가'였고, 이후 '불교' 팝업을 거쳐 이번 '종이접기'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름은 자극적인 '도파민'이지만, 콘텐츠는 정적인 것들로 채워져 온 셈이다. 이에 대해 김 바이어는 "도파민이 단순히 자극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내면의 차분함을 찾는 과정, 종이를 접으며 느끼는 몰입의 즐거움 또한 또 다른 형태의 도파민"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한 이색 마케팅을 넘어선 '공간 전략'도 숨어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향유하지만,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서브컬처나 '취향 공동체'를 발굴해 그들의 오프라인 거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 바이어는 "고객들이 단순히 물건만 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문화를 향유해야 쇼핑몰 내 추가 소비도 일어난다"며 "아이파크몰이 가장 잘하는 대중적 영역을 넘어, '덕후'들의 취향까지 아우르는 콘텐츠로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취향 저격' 전략은 실제 아이파크몰 내 상권 활성화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다. 팝업스토어를 찾아온 인파가 자연스럽게 주변 매장으로 흘러가는 '낙수 효과'다. 자녀와 함께 현장을 찾은 50세 김민수 씨는 "이번 팝업스토어 때문에 아이파크몰을 찾았지만 시간 되면 (아이파크몰 내) 다른 곳도 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팝업스토어 대기열 인근에 있는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등 식당가는 팝업 관람 전후로 식사를 해결하려는 방문객들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자극적인 숏폼의 홍수 속에서, 종이 한 장이 주는 '몰입'을 찾아 나선 사람들. '도파민 스테이션'은 이름과 달리 역설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정우 한경닷컴 수습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