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헌 주중대사 취임 100일…빛보는 '홍반장' 전략 [차이나 워치]

입력 2026-01-23 11:22
수정 2026-01-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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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취임한 지 23일로 100일 됐다. 지난 100일은 말 그대로 '빅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노 대사의 취임 직후인 지난해 11월 초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의 방한은 11년 만이었다. 두 달 만인 지난 5일엔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시 주석의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방중은 한국 대통령으로선 6년여 만이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한·중 관계…매일이 '시험대' 노 대사는 취임하자마자 전례없는 속도로 진행된 한·중 관계 개선의 한복판에 섰다. 휴전 상태이긴 하지만 미·중 무역 갈등과 첨단기술 패권 경쟁은 여전하고, '대만 이슈'를 두고 중·일 외교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 미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력은 연일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취임한 노 대사에 대한 초반의 우려는 적지 않았다. '중국통'이라는 인식에도 일단 공직을 맡아본 적이 없는 데다 윤석열 정부 때 취임한 정재호 전 대사 이후 9개량 가량 주중한국대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중한국대사관에 대한 교민들의 불신은 하늘을 찔렀고, 중국 정부 측은 윤석열 정부 시절 대중 외교 정책에 여러 차례 불만을 쏟아낸 상태였다.

한·중 관계가 사실상 최악이던 시절 취임한 노 대사의 지난 100일에 대해 교민 사회, 기업,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내린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이다. 일단 노 대사의 추진력과 적극성, 중국 외교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베이징에서 노 대사의 별명은 '노반장'이다. 한국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 영화에는 동네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처리하는 동네 반장 홍두식이 나온다. 이런 ‘홍반장’은 동네에서 발생하는 온갖 민원과 고충을 해결한다. 노 대사의 취임 후 행보가 영화 속 '홍반장'의 추진력과 저돌성, 정무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교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실제 노 대사는 교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걸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노 대사는 중요한 외교 일정 이외에도 교민 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가급적 참석해 함께 하고 있다. 교민 행사인 '한·중 민속 페스티벌', 중국 주재 한국 기업들의 정례 경영 모임인 '모닝포럼'과 각족 세미나 등이 대표적이다.
베이징 '노반장'…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 노 대사는 취임 직후 한 교민 행사에서 기자를 만나 "대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교민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최대한 교민과 접점을 넓히고 경청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취임 이후 노 대사는 30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 움직이고, 예상치 못한 현장에 불쑥 나타나는 동선으로 "교민들 생일 파티에까지 참석하려는 열정을 보인다"는 농반진반의 얘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교민 사회와 한국 기업의 애로를 챙기는 것뿐 아니라 주중한국대사관의 시스템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전까지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정례 브리핑의 질을 높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주중한국대사관의 활동 방향과 개선 사항 등을 적극 공유해야 교민 사회와 주중 한국 기업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한·중 무역과 외교 관계 관련 주요 데이터를 월간 단위로 정리해 배포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질의응답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 기업들과 네트워크 확충에도 주력하는 모습이다. 깊고 강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중 관계가 다양한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건설적인 형태를 지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산둥에서 한·중 우호주간 행사를 열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한·중관계 악화의 영향으로 중단된 행사를 6년 만에 다시 살렸다. 올해도 중국 지방정부 곳곳을 방문해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만남, 지방정부와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다.
업무 시스템 개선하고 중국과도 적극 소통 아울러 중국 신화사 산하 정책·현안 전문 뉴스 플랫폼인 국시직통차나 인민망 등 중국 매체와도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 정책 방향과 한국 기업 및 문화의 경쟁력을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양한 중국 SNS와 중국 매체들에 노출 빈도가 높아지면서 노 대사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인식이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노 대사는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SNS 웨이보에 개인 계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공공외교 강화 차원 효과도 있다는 게 노 대사의 생각이었다.

노 대사는 올해 굵직한 한·중 경제 및 외교 일정 이외에도 한국 문화 확산에 주력할 전망이다. 노 대사는 한중문화센터 원장 시절 줄곧 "건설적인 발전을 하려면 함께 일을 해야 한다"며 "미래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게 중요한데 문화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한 한국 문화 콘텐츠 제공이 아닌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혼자가 아닌 둘이 만들어 나누면, 한국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베이징에 20년 가량 거주한 한 교민은 "취임 100일로 총평을 하는 건 다소 이른감이 있다"면서도 "지금처럼 한국과 중국의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교민 사회와 한국 기업들의 사업을 위한 애로 사항에 관심을 둔다면 양국 관계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