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집단소송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정보 유출·소비재 분쟁 등의 분야로 집단소송 범위를 넓히는 미국식 집단소송 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집단소송은 피해자가 다수인 손해배상 청구 판결 효력을 전원에게 미치게 하는 제도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야 소송 당사자가 되는 ‘옵트인’ 방식과 피해자의 의사 표명 없이도 자동으로 소송에 포함되는 ‘옵트아웃’ 방식으로 나뉜다. 집단소송이 일반화된 미국은 옵트아웃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집단소송은 증권 분야에서만 가능하다. 집단소송은 판결 효력이 원고뿐 아니라 피해자 전체에 적용된다.[찬성] 공동소송만으로는 역부족…선진국처럼 제도 정비해야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진 쿠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동소송 참여자가 50만 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이다. 국내에서 제기된 공동소송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소송은 하나의 일탈행위로 피해를 본 다수의 피해자가 공동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 소송에 참여해 원고로 이름을 올려야만 법원 판결의 효력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집단소송과 구분된다.
공동소송은 한계가 분명하다. 피해 규모가 소액인 사건에서는 공동소송 참여로 얻을 실익이 부족하다. 5만~10만원을 배상받는다고 해도, 변호사 비용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는 얘기다. 비슷한 취지로 도입된 단체소송 제도 역시 유명무실한 건 마찬가지다. 소비자단체나 공익단체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데다 금전적 손해배상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실효적인 구제를 위해선 미국식 집단소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미국에선 쿠팡 사태와 비슷한 개인정보 침해 관련 집단소송에서 조 단위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사례가 적지 않다. 2018년 페이스북(현재 메타)이 7억2500만 달러(약 1조700억원)를 물어낸 게 대표적이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거액의 배상금을 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안 투자를 늘리고, 내부 통제 시스템도 촘촘하게 갖출 것으로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EU,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이 집단소송제와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순기능이 상당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분쟁 비용이 급증할 것이란 주장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판결 기준이 명확해지면, 기업도 이후 비슷한 사건에서 조기 합의나 자율 보상 기준을 잡기 쉬워진다. 장기적으로 보면 분쟁 비용이 오히려 줄어들 공산이 크다. 변호사들이 기획 소송을 난무하는 문제는 보완 장치를 두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최소 피해자 수 요건을 정하고, 보수 상한을 제한하고, 대표 당사자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등의 장치만 마련해도 소송 남발을 막을 수 있다.[반대] 소송 남발로 기업 활동 위축…"변호사 배만 불릴 수단 될 것"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 때 집단소송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데 쿠팡 사태를 계기로 이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힘을 얻게 됐다. 개인정보 유출이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미국식 대규모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경영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재판에서 지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해서다. 다퉈볼 만한 소송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 평판이 악화하고, 소비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구조는 기획 소송에 능한 변호사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피해가 미미한 사건을 앞세워 합의금을 노리는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
집단소송이 늘어나면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소송 리스크를 감안해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올릴 소지가 다분하다.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이 설비와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꺼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법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규모 집단소송은 손해액 산정, 인과관계 입증, 피해자 범위 특정 등이 어렵다. 가뜩이나 사법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집단소송제까지 늘어나면 사법 지연이 일상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집단소송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해서다. 집단소송은 개별 당사자의 비용이 매우 적게 들어 패소 부담이 작은 반면, 변호사는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어 남소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미국이나 유럽도 집단소송의 제기 요건을 제한하거나 대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 중이다. 문제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면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개인정보위원회 등이 운영 중인 과징금과 시정명령, 집단분쟁조정제도 등을 정비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하는 게 합리적이다. 기존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생각하기 - 기업 밉다고 성급한 추진 곤란…사회적 합의 거쳐야
집단소송제는 소액·다수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를 위한 대안 중 하나다. 기업들의 경각심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소송을 염두에 두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의 주장처럼 미국식 옵트아웃 방식을 곧바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기획 소송이 난무하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집단소송제가 한국의 실정에 맞는 제도인지부터 천천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효과와 부작용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도입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소송 참가 의사를 밝힌 이들에게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옵트인 방식을 테스트하는 게 정석이다. 집단소송제의 확대 여부는 테스트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개인정보 유출을 못 막은 기업이 밉다고, 당장 법부터 만드는 건 적절치 못한 대응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