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고인 정신장애 주장 '책임 회피' 단정 어려워"

입력 2026-01-23 12:00
수정 2026-01-23 12:06

대법원이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 피고인의 정신질환 주장을 ‘책임 회피’로 단정해 형을 가중한 원심을 파기했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양형 심리 또한 충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학생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된 지적장애 3급 A씨(17)의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피해자가 친구 관계를 끊으려 하자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망치와 칼 등을 미리 준비한 뒤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치고 얼굴과 목 등을 찔렀다. 다만 시민이 제지하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심신미약과 치료 필요성을 주장했고, 장애인 사법 지원도 요청했다.

1심은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장기 8년, 단기 5년의 부정기형을 선고했다. 부정기형은 소년범에게 형기의 상한과 하한을 두고 선고해 교정 성적에 따라 단기 경과 후 조기 석방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2심은 추가 심리 없이 피고인이 정신병력을 핑계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판단해 징역 장기 9년, 단기 6년으로 형을 높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신의학과적 병력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경감하고자 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어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정신적 장애 주장에 대해 면밀한 조사 없이 곧바로 양형을 가중한 원심 판단이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의 장애 내용과 재범 위험성, 치료 필요성 등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A씨가 1심과 2심에서 지속적으로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그에 부합하는 진단서·진료기록부·의무기록 사본 등을 제출했지만, 원심은 추가적인 양형 심리 절차나 조사 없이 변론을 종결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번 판결을 통해 정신장애를 주장했다는 사정 자체를 인격적 비난 사유로 삼아 가중처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