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전쟁이 선포될 것이다. 선거에서 지면 모두 당신 책임이다.” 1971년 재선을 앞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집요했다. 그는 오랜 지인이자 경제학자인 아서 번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겨냥해 “물가 통제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연봉을 50%나 올려달라고 했다”는 가짜 루머까지 흘리며 도덕성을 난도질했다. 굴복한 번스는 결국 선거용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닉슨은 이듬해 대선에서 압승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그해 3.1%이던 물가는 3년 뒤인 1974년 11.8%까지 치솟았고, 미국 경제는 이후 10년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지옥을 통과해야 했다.
반세기가 흘러 Fed의 흑역사가 유령처럼 부활했다. 지난해 리사 쿡 Fed 이사 전격 해임 시도로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는 올 들어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한 직접적인 ‘사법 전쟁’으로 비화했다. 미국 법무부는 Fed 본부 건물 리모델링 예산이 당초 19억달러에서 25억달러로 늘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파월 의장을 ‘의회 위증’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금리 인하를 목적으로 사법 시스템을 동원한 유례없는 공격이다.
대응을 자제해온 파월 의장이 공개 반격에 나서면서 통화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충돌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그는 이달 초 법무부의 소환 통보 직후 “금리 인하를 강요하기 위한 정치적 구실”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세계 중앙은행 수장들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등 금융 거물들이 파월 의장을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이 파월을 옹호하는 이유는 개인적 친분이나 정책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순간 기축통화의 신뢰가 손상되고,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이 흔들린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강한 반발에 차기 의장으로 유력하던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대신 케빈 워시 전 Fed 이사가 급부상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 구상에도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공격의 빌미가 된 건물이 현대 Fed 독립의 아버지, 매리너 에클스의 이름을 딴 ‘에클스빌딩’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장으로 발탁한 에클스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신설해 금리 결정 시스템을 투명화하고, 재무부의 당연직 이사 참여를 배제하며 Fed 독립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하자 의장 사퇴 시 Fed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던 관례를 깨고 끝까지 남아 정부 간섭에 맞섰다. 특히 1951년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위원들을 소환해 금리 인하를 압박한 뒤 “Fed가 협조하기로 했다”는 허위 발표를 하자, 에클스는 직접 기록한 회의록을 언론에 폭로하며 권력의 기만을 무력화했다. 이 투쟁은 ‘Fed는 독자적 판단에 따라 통화정책을 운용한다’는 대협약의 토대가 됐다.
권력자가 화폐를 통제하려는 탐욕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돼 왔다. 제국 몰락을 재촉한 로마의 ‘데나리우스’ 은화와 낮은 순도로 ‘늙은 구리 코’로 조롱받은 헨리 8세의 스털링 은화는 화폐가치 훼손이 국가의 신뢰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에클스빌딩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단순히 금리 몇 %포인트를 결정하는 싸움이 아니라 21세기의 통화 독립전쟁이다. 화폐를 정치의 하녀로 삼는 순간, 그 대가는 언제나 국민의 지갑 속 가치가 증발하는 경제적 재앙으로 돌아왔다. 2026년 미국의 ‘화폐전쟁’은 포퓰리즘의 유혹을 물리쳐가며 지난 80여 년간 힘겹게 쌓아 올린 통화정책의 최후 방파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