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련 책임 당국에 의하면 한두 달 정도 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들은 “추가 설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일제히 입을 닫았다. 이 대통령이 15일과 20일 추경 필요성을 언급하자 청와대가 곧바로 “추경 편성을 추진하거나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은 것과 대조적이다.
외환당국이 침묵하자 시장에선 이 대통령이 ‘한두 달 내 1400원 전후’라고 콕 집어 언급한 배경에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통상 외환당국은 구체적 환율 수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조만간 환율을 잡을 특단의 대책이 나온다는 정보를 토대로 공식석상에서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있고, 글로벌 투자은행(IB) 전망치를 ‘관련 책임 당국’으로 잘못 표현했다는 관측도 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이 환율의 구체적인 수준과 시점을 공언한 만큼 외환당국은 이 발언을 사실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강력한 구두 개입과 실개입이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주로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해외 투자와 관련해 외환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대책이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외환당국은 다음달 국내시장 복귀 계좌(RIA)가 출시되고 1분기에 국민연금 해외 투자의 ‘뉴프레임워크’ 수립이 마무리되면 환율을 이 대통령이 언급한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시장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시장에 달러가 넘쳐나는데도 환율이 계속 오르는 건 외환당국의 카드가 소진됐다고 보고 미국 주식 투자 등을 위해 달러를 사려는 실수요자가 많다는 의미”라며 “한두 달 만에 환율을 80원 떨어뜨리려면 외환보유액을 써서 시장에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환당국도 외환보유액 수준을 고려해 시장개입 물량을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재정경제부에서 환율을 담당하는 국제금융 라인이 경질될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환율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도그마(교조적 신념)에 빠져 있다”며 국제금융 라인을 여러 차례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외환시장 수급이 구조적으로 달라졌는데 외환당국이 전통적인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다른 부서에 비해 순혈주의가 강한 국제금융라인의 대대적인 인사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력 경제정책국장 후보자와 국제금융국장 후보자를 맞바꾸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환율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시장 기대심리와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장수를 바꾸면 외환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형규/정영효/강진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