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지나야 회복할 수 있을까요?”, “10년 생존율은 얼마나 되나요?”
진료실에서 이런 질문이 반복된다. 환자와 가족은 대개 ‘얼마나’를 묻는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숫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게 하고, 판단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결정을 돕는다.
하지만 의사는 숫자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기 쉽지 않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의사들은 숫자로 말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숫자는 예측처럼 들리고, 예측은 곧 약속처럼 받아들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숫자 대신 방향성을 담은 표현을 택한다. “현재로서는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같은.
앞날을 대비하려는 환자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어 하고, 예외의 가능성을 아는 의사는 단정보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어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는 숫자를 통해 미래를 붙잡으려 하고, 의사는 그 숫자를 쉽게 내놓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대화는 어긋난다. 확률이나 숫자로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해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단일한 수치보다는 범위를 제시하는 편이다. 예컨대 40~60%, 혹은 3~6개월이라는 표현은 결과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확률이나 범위보다 ‘빈도’가 사람들의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0명 중 3~4명에서 이런 부작용이 생깁니다”, “10명 중 7~8명이 이에 해당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방법이 환자의 판단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 보기 때문이다. 확률은 계산되지만, 빈도는 떠올려진다. ‘10명 중 몇 명’이라는 말은 숫자가 아니라, 얼굴을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한 대화는 진료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 회의에서도, 투자 설명회에서도,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말이 들려온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전문가가 있는 곳일수록, 말은 점점 커지고 숫자는 흐려진다. 그것은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것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진료실은 이 언어의 구조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일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시골의사> 후반부에 의사가 환자인 소년의 침대에 강제로 눕혀진 장면이 있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의사에게 성자나 기적을 행하는 자의 역할을 기대하며 그를 벌거벗긴 채 환자 옆에 눕혔다. 그때 시골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처방전을 쓰는 건 쉽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어렵다”라고. 환자와 고통을 온전히 나누는 동반자가 되는 길이 얼마나 아득한가를 말해주는 장면이다.
시대는 바뀌었고, 검사는 더 정밀해졌으며 치료법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말보다는 태도로 신뢰를 전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