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범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IT 업계의 ‘적자생존’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생산 라인이 쏠리면서 제때 부품을 구하지 못한 중소 업체들이 사업을 접거나 신제품 출시를 취소하는 등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양새다. ○“팔수록 손해”... 신제품 줄줄이 취소22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5위 PC 제조사인 대만 에이수스(ASUS)는 최근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를 중단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중국 드림스마트 그룹도 슬림형 모델인 ‘메이즈 22 에어’의 출시를 취소했다. 드림스마트 관계자는 “작년 4분기 이후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며 생산 비용은 물론 전체적인 사업 로드맵에 큰 충격을 줬다”고 밝혔다.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 나섰던 업체들도 올들어 출하량 목표치를 무더기 하향 조정하고 있다. 샤오미는 올해 출하량 전망치를 기존 1억8000만대 대비 1000만~7000만대를 줄이기로 했다. 저가 스마트폰 강자인 트랜션은 당초 1억1500만 대로 잡았던 연간 생산 목표를 3000만~4500만 대나 줄였다.
중소업체들이 이같은 조정에 나선 건 범용 메모리의 가파른 가격 상승세다. 메모리 시장의 가격 지표 역할을 하는 범용 D램(DDR4 8Gb)의 가격은 지난해 말 9달러를 돌파하며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초 1.35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7배 넘게 폭등한 것이다.
이에 연동되는 스마트폰용 저전력 D램(LPDDR) 가격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범용 D램이 40~60% 오르는 동안 LPDDR 가격도 전분기 대비 최대 45% 급등했다. 특히 저가 스마트폰의 주력 메모리인 LPDDR4X의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크게 늘어나 팔수록 수익성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론이 지난해 10월 AI 서버용에 집중하기 위해 수익성 낮은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 비중을 줄인 것도 기름을 부었다. 중소 업체들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급 절벽에 직면해서다. ○삼성·애플, 반사이익문제는 올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D램 가격은 지난해 4분기 40~60% 급등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15~20% 추가 상승이 예고됐다. 통상 스마트폰 원가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5% 수준이지만 최근엔 20~25%까지 치솟았다.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와 애플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다는 분석이다. 강력한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메모리 확보가 수월한데다, 원가 압박에서도 중소 업체보다는 영향이 적다는 분석이다. 저가 스마트폰은 원가 부담이 25% 늘어나는 반면, 프리미엄 폰은 상승 폭이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애플은 지난 4분기 중국 시장에서 화웨이를 제치고 출하량 1위를 탈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시장은 부품 확보 능력이 생존력이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프리미엄 폰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브랜드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