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역대 최대, 브랜드 상징성도 최고조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3분기까지 3조433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후원하는 스포츠 팀도 잘나갔다. 함영주 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대전하나시티즌은 2025 K리그1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올해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룹이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던 이 시점에 함 회장의 채용비리 재판이 다시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무죄면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는 갈림길이다.
◆8년 끌어온 채용비리 재판, 이제 결론?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월 29일 오전 함 회장의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2018년 첫 기소 이후 약 8년 만이자 2023년 11월 항소심 선고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함 회장은 하나은행장이던 2015년 KB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로부터 그의 자녀가 하나은행 공채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인사부에 전달해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함 회장이 서류전형 이후 진행한 합숙면접 과정에서 청탁 대상자가 탈락할 경우 다시 합격시키도록 인사부에 지시하는 등 채용 절차 전반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고 2018년 함 회장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2022년 재판 과정에서 함 회장은 “어렵게 연락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지원 사실을 인사부에 전달했다”며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판단이 짧았다”고 진술했다. 다만 “인사부가 채용 기준을 어기면서 합격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직접적인 채용 결과 조작 의도는 부인했다.
함 회장은 2015년·2016년 신입사원 공채 당시 남녀 채용 비율을 4대 1로 하라고 지시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간 하나은행의 신규 채용 결과는 지원자 구성과 뚜렷한 괴리를 보였다. 2020년 12월 9일 서울서부지법이 선고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채용비리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하나은행 신입사원 공개채용 지원자의 남녀 비율은 약 55대 45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성비는 2015년과 2016년 모두 남성 4, 여성 1 수준으로 지원 단계의 성비와 비교해 현저한 격차가 나타났다.
당시 하나은행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에는 성별을 구분해 선발한다는 내용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았다. 겉으로는 성별 제한이 없는 공개채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내부적으로 성비를 조정하는 기준이 이미 설정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은행 측도 이에 대해 반론을 폈다. 하나은행은 장기적인 인력 수급 계획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행원과 책임자급 인력 구조를 중장기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의 합격 비율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1심 무죄에서 2심 유죄로
함 회장의 채용비리 사건은 2022년 3월 1심 판결을 받았다. 기소된 지 3년 9개월 만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남녀 채용 비율과 관련한 발언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구체적인 합격자 선정이나 점수 조작을 지시한 행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채용 실무는 인사부가 담당했고 함 회장이 개별 지원자를 특정해 합격 또는 탈락을 지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기업이 장기적인 인력 수급과 조직 운영을 고려해 채용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경영 자율성의 범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2023년 11월 항소심 판단은 1심과 정반대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부는 함 회장의 행위가 채용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보고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식적인 지시 여부보다 발언이 나온 위치와 그 영향력에 주목했다. 당시 함 회장은 하나은행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은행장으로 이 같은 위치에서 나온 발언은 실무진에게 사실상의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업의 채용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범위가 특정 성별을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형사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과 함 회장 측 모두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들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함 회장과 함께 기소된 장기용 전 하나은행 부행장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판결받았다. 양벌규정에 따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하나은행 법인 역시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별도로 기소된 하나은행 인사부 직원들은 2018년 4월 재판에 넘겨진 뒤 2020년 12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1심의 유죄 판단과 형량이 대부분 유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 함 회장, 모든 고비 넘기나
함 회장은 2022년 3월 하나금융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후 연임 여부를 둘러싼 관심이 컸는데 가장 큰 변수는 나이였다. 하나금융 지배구조 내부규범상 회장은 만 70세를 넘길 수 없고 재임 중 70세가 되면 최종 임기는 해당일 이후 최초 정기주주총회까지로 제한된다. 1956년생인 함 회장은 규정대로라면 연임해도 1년 정도만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부 규정이 바뀌면서 2025년 3월 연임에 성공한 함 회장은 2028년까지 회장직을 이어가게 됐다.
함 회장의 연임이 확정된 이후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제 모든 고비는 넘겼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재판 이야기도 한동안 잠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함 회장 관련 재판 판결 일정 발표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하나금융은 물론 금융권 전체가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면 함 회장은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라 회장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해당 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나 집행유예가 확정된 경우 금융사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다. 반대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거나 무죄 취지로 판결하면 함 회장과 하나금융이 안고 있는 사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전망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