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애하는 X’는 한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글로벌 OTT인 HBO Max를 통해 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대만 등 7개 국가에서 TV쇼 부문 1위에 올랐다. 이뿐 아니라 일본의 디즈니플러스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또 다른 글로벌 OTT에 해당하는 라쿠텐 비키, 중동·북아프리카 OTT인 스타즈플레이 등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토종 OTT의 콘텐츠가 다수의 글로벌 OTT에서 큰 인기를 얻은 흥행작이 된 것이다.
그 비결은 브랜드관 운영을 통한 해외 진출에 있다. 티빙은 지난 1월 2일 HBO Max에서 ‘티빙 브랜드관’을 열었다. 이를 통해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17개 지역에 K콘텐츠를 공급한다. 정식 오픈 전에 선공개됐던 ‘친애하는 X’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티빙은 일본 디즈니플러스에서도 브랜드관 운영을 시작했다.
K-OTT의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리며 시장에 조금씩 활기가 돌고 있다. 아직은 완전한 초기에 해당하지만 시작부터 분위기가 괜찮은 편이다. K콘텐츠 열풍과 맞물려 글로벌 시청자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토종 OTT가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와 맞대결을 펼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대신 영리하고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동력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와 동시에 화력을 점점 키워 K콘텐츠 열풍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의미 있는 걸음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K-OTT의 새로운 생존 활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브랜드관으로 승부수 띄운 티빙
플랫폼 사업, 특히 OTT 사업은 태생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비즈니스 모델이다. OTT 사업의 큰 단점은 특정 IP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특정 오리지널 콘텐츠가 흥행하면 큰 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엔 막대한 손실을 고스란히 지게 된다.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그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글로벌 OTT보다 체급이 훨씬 작은 토종 OTT가 제작비를 무한정 투입하긴 어렵다. 제작을 한다고 해도 글로벌 OTT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져 흥행이 쉽지 않다. 한국 시장에서만 OTT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선 한계가 더욱 명확하다.
그러는 사이 넷플릭스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넷플릭스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K콘텐츠에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배우, 작가, 감독이 일제히 몰리면서 넷플릭스는 거대한 콘텐츠 블랙홀이 되었다. 덕분에 K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돌풍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중요한 지식재산권(IP) 다수는 넷플릭스가 차지하게 됐다. K콘텐츠를 만들어 성공시켜도 핵심 IP는 글로벌 OTT의 것이 되는 모순된 상황. 이 점이 콘텐츠 산업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토종 OTT의 해외 진출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티빙은 HBO Max, 디즈니플러스의 브랜드관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함하여 CJ ENM 계열의 다수 콘텐츠를 공개한다. JTBC, MBC 등 다른 방송사의 콘텐츠도 함께 제공한다. 이는 단일 플랫폼에서 특정 콘텐츠를 흥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IP 성과를 다수의 플랫폼에서 함께 도출하는 방식에 해당한다. ‘성공 또는 실패’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리스크는 분산시키고 성과는 차곡차곡 누적한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해외에서 플랫폼 자체를 여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실속을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숍인숍(Shop-in-Shop)’ 형태는 해외 OTT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도 활용되어 왔다. 현재 티빙엔 애플TV플러스, 쿠팡플레이엔 HBO와 파라마운트플러스의 브랜드관이 입점되어 있다. 그리고 반대로 국내 OTT도 해외 진출에 숍인숍 방식을 활용하게 됐다. 이는 ‘피기백(Piggyback)’ 전략과도 연결된다. 피기백은 ‘등에 올라탄다’는 의미로 해당 시장에서 이미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춘 기업의 시스템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에서 처음부터 직접 길을 닦으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 실패 부담도 커진다. 하지만 브랜드관 형태로 들어가면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등에 올라타 연착륙할 수 있다. 초기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해당 국가의 규제 등 진입장벽도 우회할 수 있다. 나아가 다양한 성장 기회도 엿볼 수 있다. 플랫폼을 열기 전 브랜드관 운영을 통해 현지에서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확인하는 등 미리 분위기를 익히는 데 효과적이다.
마침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토종 OTT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본래 타사 플랫폼 안에 들어가게 되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일정한 한계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K콘텐츠의 열풍과 맞물려 K-OTT 브랜드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콘텐츠부터 신작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대형 K콘텐츠 라이브러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HBO Max나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한국 OTT와의 협업을 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K콘텐츠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량의 K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관 운영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해외 진출도 이뤄지고 있다. 웨이브는 자회사인 웨이브 아메리카를 통해 OTT ‘코코와’를 운영하고 있다. 코코와는 미국, 캐나다 등 미주 30개 지역에서 K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OTT에 해당하는 라프텔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 6개국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 K콘텐츠, K-OTT의 동반성장을 위해
해외 진출뿐만 아니라 토종 OTT가 선택한 또 다른 영리한 전략으로는 ‘스포츠’를 꼽을 수 있다. OTT는 특정 IP의 흥행 여부에 따라 구독자의 가입과 이탈이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이와 무관하게 평소에도 구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종 OTT는 이를 위해 스포츠를 선택했다.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콘텐츠이며, 광범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장르에 해당한다. 토종 OTT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스포츠 중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티빙은 한국프로야구(KBO) 중계에 이어 다양한 스포츠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티빙은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대회 UFC 경기를 오는 2029년까지, 올해 테니스 시즌의 첫 그랜드 슬램 대회인 ‘2026 호주오픈’도 2월 1일까지 독점 중계한다. 쿠팡플레이는 프리미어리그(PL), K리그 등 다양한 축구 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프로농구(NBA), 미국프로풋볼(NFL), 미국메이저리그사커(MSL) 등 스포츠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시장에 절대 강자가 있을 때 직접 정면 승부를 펼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토종 OTT가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잇달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분위기 반전은 이뤄지지 않았고, 넷플릭스의 힘은 더욱 막강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무작정 낙담할 수만은 없다. 다행히 현재 토종 OTT는 유연함을 내세워 틈새전략을 짜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이 같은 토종 OTT의 노력에 해외 진출 지원책과 같은 다양한 정부의 정책이 마련된다면 K콘텐츠와 K-OTT의 동반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