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생각하는 정의와 법의 정의는 왜 다를까요. '정희원의 판례 A/S'에선 언뜻 보면 이상한 판결의 법리와 배경을 친절히 설명해드립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8년 높은 형량입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검찰이 적용한 범죄 혐의를 일부 달리 판단해 형량을 높인 이례적인 ‘작심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왜 한덕수 전 총리에게 왜 중형을 구형했을까요? 왜 ‘15년 구형’이 ‘23년’으로 뛰었나이번 판결의 핵심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가 한덕수 전 총리의 혐의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했는지에 있습니다. 내란 특별검사팀은 한 전 총리를 당초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범행 방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내란의 결정적 실행 주체가 아니라 국무총리로서 계엄을 충분히 막을 권한이 있었음에도 윤 전 대통령의 내란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재판부 요청에 따라 특검팀이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한 전 총리에게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가 추가됐습니다. 내란을 방조한 게 아니라 계획을 알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한 전 총리의 선고 형량이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보다 무겁게 나온 결정적 배경으로 꼽힙니다. 재판부가 형이 절반으로 감경되는 ‘내란 방조’ 혐의가 아니라 법정형이 최대 징역 30년에 달하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한 전 총리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의 이런 인식은 판결문에서도 드러납니다. 재판부는 21일 판결을 선고하며 “처음 기소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는 범죄로 성립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내부자들 사이에서는 각자 수행한 역할에 따라 우두머리, 지휘자, 중요임무종사자 등으로 처벌될 뿐, 형법 총칙의 방조범 규정이 적용될 여지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형법상 내란죄는 애초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눠 저지르는 범죄여서 외부 조력자가 있을 수 없고, 한 전 총리도 내란 집단의 내부자라는 해석입니다.
내란 '키맨' 한덕수…중형 불가피 재판부는 한 전 총리를 내란 중요임무종사자로 지목하며 그가 어떤 맥락에서 계엄을 막을 수 있었는지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국무회의가 열린 급박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미리 알고 국무회의라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대통령실로 소집하면서 소집 이유를 알리지 않은 것은,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가 대통령실로 오지 않아 의사정족수가 갖춰지지 않고, 그 결과 윤 전 대통령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른 국무위원들의 반대를 사실상 묵살한 점도 한 전 총리가 계엄의 ‘내부자’ 역할을 했다는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 다른 국무위원들이 대접견실에서 일어나 윤 전 대통령에게 반대 의사를 표시할 때에도 별다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고, 최 전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설득해 보겠다고 말할 때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과 함께, 평소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사유로 든 국회의 탄핵소추와 예산 삭감, 쟁점 법안 단독 처리 등이 국정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인식에 한 전 총리도 공감해 왔다는 정황을 종합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이 별다른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비상계엄 선포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해 실행을 지지한 것으로 봤습니다. "위로부터의 내란은 그 특성 달라" 재판부는 또 한 전 총리가 가담한 내란의 성격을 규정하며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며 “이런 형태의 내란은 ‘친위 쿠데타’라고 불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위로부터의 내란이 지닌 위험성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며 “선출직 권력자들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는 재판부가 이번 12·3 비상계엄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으킨 ‘신군부 쿠데타’와는 다르게 규정해 법리를 새롭게 적용했음을 보여줍니다. 신군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권력자들이 사전에 담합해 실행한 이번 12·3 비상계엄은 성격 자체가 달라 더 엄중하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중형을 선고한 이유로 '쉽게 봉합되지 않는 사회 갈등'을 낳은 책임이 있다는 점도 명시했습니다. 12·3 비상계엄이 한 전 총리가 사실상 가담한 가운데 실행되면서 윤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잘못된 극단적 정치 주장에 빠지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입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이 부분을 길게 언급하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적시했습니다. 아래 판결 선고문에도 전문에도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어 위헌, 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계엄, 잠정적 계엄, 경고성 계엄을 당연하더라도 주장하는 사람들. 지난 작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와 같이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전 총리 변호인단은 “50년 동안 공직에서 일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고령인 데다 경도 인지장애가 있으며 우울증 치료도 받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중형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그만큼 12·3 비상계엄의 엄중함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죠.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판부 독립 원칙상 형량이나 결론이 기계적으로 따라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내란 성립 여부와 폭동 개념, 국헌 문란 목적에 대한 해석에서는 동일한 법리 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계엄에 핵심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키맨'들의 중형도 마찬가지로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법원의 시선에서는 이들 모두 위법적 비상계엄 선포가 이뤄질 상황임을 미리 알고도 가담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