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년이 됐다. 지난 1년 동안 세계경제는 미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움직였다.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는 가운데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최대 변수로 꼽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작년 11월 부산 김해공항에서 약속했던 미·중 간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 민간소비 양극화 현상 심해져미·중 간 패권 경쟁은 기본적으로 경기 상황에 좌우한다. 경기 회복, 골디락스,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 등 지난 1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이끈 미국 경제에 대한 다양한 평가다. 성장률만 놓고 본다면 작년 1분기 –0.6% 역성장한데 이어 2분기에는 3.8%, 3분기에는 4.3%까지 뛰어올랐다. 두 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방식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분명히 회복 국면이다.
하지만 올해 1월 말 발표될 작년 4분기 성장률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셧다운 종료에 따라 미뤄졌던 재정지출이 집중적으로 집행됐어도 2%대에 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분기 만에 성장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지표보다 체감경기가 더 나빠질 확률이 높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나. 총수요 항목별 GDP 기여도(Y=C+I+G+(X-M), Y: 성장률, C: 민간 소비, I: 설비투자, G: 정부 지출, X-M: 순수출)를 보면 미국 경제가 분기별로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GDP 기여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지탱해 줘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을 구가하는 때는 반드시 안정적인 민간소비가 받쳐줬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국민의 소비를 보면 크게 두 가지 점에 문제가 있다. 일단 절대 수준 면에서 예측 가능한 시장경제보다 수시로 바뀌는 행정명령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모든 계층이 소득이 있더라도 소비를 줄이는 ‘구인 효과(驅引效果·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하고 있다.
소득 계층별로도 민간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도 눈에 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빅테크 사업이 주도하면서 계층별 소득 양극화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5분위 계수로 현재 계층별 소득을 고려하면 하위 20% 계층이 상위 20% 계층을 한 세대 안에 뛰어넘기가 불가능해졌다.
결국 미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것은 질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실업률, 물가, 무역수지 등 다른 거시경제 변수와 성장률 간의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s)’도 흐트러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는 경제정책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
대표적으로 올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따져 보자. 작년 9월 FOMC 회의 이후 Fed는 금리 결정의 우선순위를 양대 책무지표보다 거시금융 안정, 즉 위험관리에 두고 있다. 취임 이후 제롬 파월 의장은 처음으로 미국 증시가 비이성적 과열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 급락과 거품붕괴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여건에서 고금리를 조정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트럼프 진영의 주장대로 한 번에 두 차례 이상의 스트롱 컷을 단행하면 경기침체 우려를 확인해 주기 때문에 주가가 폭락할 확률이 높다. 오히려 0.25%포인트씩 소프트 컷을 단행해야 고평가 주가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올해 금리변경 문제를 놓고 Fed 이사 간에 분열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요인에서다. ◆ 첨단기술 분야서 맞붙는 미·중 미국 경제와 달리 중국 경제는 성장률 자체부터 문제다. 작년 분기별 성장률을 보면 1분기 5.4%, 2분기 5.2%, 3분기 4.8%, 4분기 4.5%로 GDP 통계를 작성한 이후 하락 속도가 가장 빠르고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판단 기준을 적용하면 중국 경기는 침체국면이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38개월 연속 마이너스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제조업의 강점을 갖고 있는 중국 경제는 생산자물가가 선진국처럼 소비자물가를 3개월 정도 앞서가는 선행지표보다 경제 활력 지표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3년 이상 PPI 상승률이 마이너스 국면이 지속되는 것은 제조업 활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계속해서 떨어져 왔던 것도 이 요인이 가장 크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7∽8% 성장률을 유지하던 중국 경제가 최근 들어 4%대로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 성장률이 4%대 초반으로, 2030년 이후에는 성장이 멈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진핑 정부도 이런 점을 우려해 2015년부터 제조업 2025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첨단기술 패권의 핵심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 이상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등과 비교할 때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상 유아기에 불과한 중국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트럼프 집권 1기 출범과 맞물리면서 초기에는 조만간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로 성과도 있었다. 골드만삭스 등도 2040년이 넘어서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던 미국 추월 시기를 2028년 이내로 앞당겨지지 않겠느냐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집권 1기 때 트럼프 정부는 나바로 패러다임을 근거로 ‘중국 적, 공산당은 악’이라는 전제하에 중국에 대해 초강경하게 나섰지만 의외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략상의 실패로 제조업 2025 계획의 초기 성과는 중국의 전략상 승리가 아니라 반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체는 대중국 전략을 수정하면서 곧바로 입증됐다. 조 바이든 정부가 기득권을 활용한 셀러번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반도체 굴기 구상을 추진했다. 까마귀대 까마귀 비유되는 나바로 패러다임과 달리 독수리대 까마귀 싸움으로 설리번 패러다임의 대중 전략이다. 제이크 설리번은 바이든 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잘못된 대중 정책이 바로잡히면서 트럼프 집권 1기 때 가려졌던 미국의 기득권도 살아났다.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과의 격차가 다시 30년 이상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가장 부담이 됐던 요인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최대 희생자인 경합주 근로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더 강경한 공약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집권 2기 때는 중국과의 첨단기술 패권 다툼을 관세를 무기로 동맹국 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가장 희생물로 삼았다. 양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1조 달러에 육박한다. 미국 내 진출한 외국 기업의 자국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권교체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과제다.
반면 중국은 챗GPT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2023년부터 ‘AI+행동계획’을 추진했다. 인식형, 생성형, 피지컬로 가는 AI 발전 단계상 초기 단계에서 미국에 뒤떨어진 점을 인식해 곧바로 최종 단계를 겨냥했다. 결과는 서방 선진국도 중국을 쫓아가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중국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도 인프라 감축법(IRA)과 관계없이 AI 산업에 금융 지원 등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집권 1기 때 실수를 반복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중간선거에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경제와 글로벌 증시 모습도 미·중 간 벌어지고 있는 첨단기술 대전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