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투자확약 받아야 인허가 내준다니"…고사 위기 몰린 해상풍력업

입력 2026-01-21 17:33
수정 2026-01-22 01:48
해상풍력 개발기업 A는 최근 기술팀 인력을 구조조정했다. 한국 시장 철수도 검토 중이다. 또 다른 해상풍력 업체 B는 한국 지사 인력을 극소수만 남겨둔 상태다. 이들은 허가 과정에서 정부가 요구하는 과도한 재무 요건 때문에 한국 사업을 추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해상풍력 개발사업을 하는 업체 8곳은 최근 한국풍력산업협회에 “기후에너지환경부 전기위원회의 발전사업 허가 단계에서 요구하는 ‘재무입증 기준’이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협회는 다음달 초 회의를 거쳐 기후부에 의견서를 공식 제출하기로 했다.

업체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2023년 8월 개정된 발전사업 허가 신청 기준이다. 이전에는 총사업비의 10%에 대한 투자의향서(LOI)만 제출하면 됐는데, 개정 이후에는 사업을 수행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전체 사업비의 1%를 자본금으로 넣고, 추가로 15%에 해당하는 투자확약서(LOC)를 받아와야 허가를 내주는 식으로 바뀌었다.

풍력업계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 초기에 LOC를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입지를 발굴하고, 풍황계측기를 설치하는 시점부터 착공까지 통상 7~10년이 소요돼 불확실성이 큰 데다 이 기간에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금융 여건이 바뀌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비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워서다.

해상풍력은 1GW(기가와트) 규모 사업 기준으로 5조~7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다. 현재로선 1GW급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최대 700억원의 초기 자본금 납입과 함께 1조원 규모의 LOC를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이들은 도시가스 배관 프로젝트 등에선 공급 개시 시점에 재무 요건을 충족하도록 유연성을 둔 것과 비교하면 해상 풍력에만 과도한 ‘재무 기준’을 적용한다고도 토로한다.

정부 관계자는 “재무 기준은 해상풍력발전사업 허가권을 되파는 ‘허가증 장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지난해 해상풍력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과거처럼 풍황계측기를 설치해 특정 해역을 선점하는 방식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재무 확약 기준을 완화해야 해상풍력 발전을 더 빨리 보급하고, 국내 공급망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