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비상장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지난 9일 새해를 맞아 이례적인 소식을 알렸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7500기에 달하는 위성 물량을 추가로 승인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전 세계 국가와 기업이 보유한 위성을 합쳐도 이 물량의 절반이 안 된다. 스페이스X는 버려지던 1단 로켓을 재사용하는 기술로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여 ‘재사용 로켓 혁명’을 이끌어냈다. 지구 500~2000㎞ 상공 저궤도에 스페이스X가 보유한 스타링크 위성은 9000여 기, 확보해둔 위성 면허 총량은 1만9400기에 달한다. 머스크가 제시한 목표는 4만2000기다. 통신 효율이 가장 좋은 고도를 모조리 선점하겠다는 목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페이스X는 대형 화물용 로켓인 스타십의 완전 재사용(1·2단) 실험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회당 발사 비용을 최대 200만달러, ㎏당 비용은 100달러로 낮춰 세계 각국의 우주 화물 수요를 독점하고 달과 화성 진출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우주산업에서 ‘태풍의 핵’으로 자리잡은 스페이스X의 로켓 개발 공장이 있는 곳이 미국 텍사스주 맥그리거다. 이곳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템플시에 국내 최대 특수합금 제조사 세아창원특수강이 2100억여원을 들여 스페이스X 엔진용 니켈 계열 초내열 합금으로 추정되는 특수합금 공장을 연 6000t 규모로 짓고 있다. 스페이스X의 재사용 발사체 도입으로 발사 단가가 낮아지자 지구 궤도를 선점하기 위한 ‘대량 양산 경쟁’이 펼쳐지면서 이미 방위산업과 반도체로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극한 기술’
위성은 지구 저궤도에서 태양광을 받는 면은 120도, 그늘진 면은 영하 180도다. 300도의 온도 차가 90분마다 반복된다. 로켓이 대기를 뚫고 나갈 땐 여섯 배의 중력이 가해진다. 3㎜ 폭의 엔진이 견뎌야 하는 온도는 최고 3500도, 엔진 옆 연료탱크 온도는 영하 183도로 ‘극과 극’이다.
이 같은 극한 환경을 맞춤형으로 대응하는 게 소재·부품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다. 납품 조건이 까다로운 조선·방산 사업이나 반도체 사업을 하다가 우주 사업으로 진출하는 회사가 적지 않은 배경이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주문 수량이 많은 방산과 반도체 사업을 ‘캐시카우’로 둔다는 것이다. 세아창원특수강 같은 ‘원소재’ 기업은 특히 초고온을 견뎌야 하는 발사체와 위성 제조 시장에서 모두 주목받고 있다. 세아창원특수강은 본격적인 우주 소재 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 1650도에서도 금속 성질이 유지되는 초내열합금 소재를 개발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을 둔 켄코아에어로도 미국 록히드마틴과 스페이스X의 협력사로 합금 소재를 유통·가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링크 대항마인 아마존은 블루오리진과 함께 카이퍼 프로젝트(3236기)를 펼치고 있다. 이외에 로켓랩, 파이어플라이 등 중소형 로켓 회사도 한국 소부장업계를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궤도 위성은 수명이 5년으로 짧다”며 “스페이스X 1세대 위성의 교체 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신규 수요뿐 아니라 교체 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받는 건 위성과 발사체지만 지상 장비 시장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인텔리안테크는 영국 원웹의 저궤도 지상 기지국 안테나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해상용 위성 통신 안테나도 전 세계 대형 선박 10척 중 6척이 이 회사 안테나를 쓸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이 강점우주산업에선 헤리티지(납품 이력)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업계 대표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기존 조선·방산·반도체 소재·부품 회사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하는 누리호,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인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사업, 425 위성 사업을 통해 헤리티지를 쌓고 있다.
수만 개 피팅(관이음쇠)과 밸브를 우주 발사체에 공급하는 하이록코리아(조선)와 네오스펙(방산), 스페이스솔루션(반도체)이 그런 업체다. 이 기업들은 반도체와 조선업에서 다진 유체 제어 기술을 우주에 적용하고 있다. 무중력인 우주에서 연료가 엔진으로 들어가게 하는 연료탱크 기술도 국내 기업이 갖추고 있다. 천궁-2 유도무기 기체 등을 생산하는 두원중공업은 누리호 2·3단 발사체 탱크 공급사이기도 하다. 스페이스솔루션도 작년 말 발사한 차세대 중형위성 3호에 PMD 방식의 연료탱크를 처음 납품했다. 한 탱크 제조사 대표는 “같은 부품이어도 미국 소부장 업체 납기가 한국 업체의 2.5배고, 원가를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부르기도 한다”며 “스페이스X 등의 주문에 밀린 로켓 회사들이 한국 업체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호 헤리티지’로 글로벌 시장 개척위성을 보호하는 전면부를 뜻하는 페어링은 탄소섬유 복합재 성형기술을 보유한 스페이스프로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작할 수 있다. 엔진의 화염을 직접 견디는 연소기 제작 기술은 비츠로넥스텍이 갖췄다. 3000도 이상 초고온을 견디는 접합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에스엔에이치(SNH)는 로켓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연료 펌프 분야에서 초정밀 가공 기술을 보유했다.
위성의 두뇌인 표준탑재컴퓨터(OBC)는 AP위성이 유일하게 기술을 갖췄다. 차세대중형위성 등에 들어가는 컴퓨터를 국산화해 시스템 설계 능력을 입증했다. 위성의 눈과 귀가 되는 무선주파수(RF) 부품에서는 하나마이크론(RF 통신칩 패키징), 센서뷰와 기가레인(RF 케이블 및 커넥터)이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초고주파 처리 기술은 최대 1TB(테라바이트) 데이터 처리를 목표로 하는 6세대(6G) 통신의 핵심으로 꼽힌다. 우주에서 길을 찾는 위성항법장치는 덕산넵코어스와 파이버프로가 위성 수요에 대응할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이 제작하는 항법용 자이로센서와 수신기는 위성의 자세를 제어하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