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AI 버블론, 혁신과 과열 사이

입력 2026-01-21 16:59
수정 2026-01-22 00:05
자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5000을 눈앞에 뒀고, 미국 S&P500지수는 7000을 넘나들며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이 거대한 랠리의 진원지는 단연 인공지능(AI) 투자 붐이다. AI 모델 학습과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역사적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초대형 슈퍼사이클이 도래한 것이다.

주가가 급등하자 ‘AI 버블론’이 제기됐다. 혹자는 “AI 혁신이 눈앞에 실재하는데 무슨 버블이냐”고 반문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생성형 AI 혁신은 1990년대 닷컴 버블 당시의 실체 없는 혁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AI 혁신은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확장 중이며, 필자의 강의실에서도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눈에 띄게 향상될 정도다. 낙관론자들은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이 2030년까지 미국 경제를 매년 4%, 심지어는 10% 이상 성장시킬 것이라고 예견한다.

따라서 AI 버블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AI 기술 자체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주가와 신용의 밸류에이션 문제다. 현재의 주가는 막대한 설비 투자가 곧 생산성 향상과 수익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선반영하고 있다. 만약 수익 실현이 지연되거나 생산성 향상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주가는 가차 없이 재평가될 것이다. 이것이 버블 붕괴 혹은 조정의 본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리스크가 있을까? 첫째, 미국 빅테크들의 순환 투자다. 엔비디아는 오픈AI에 투자하고, 오픈AI는 그 돈으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을 산다. 오픈AI가 투자를 유치한 AMD와 오라클 역시 엔비디아 칩을 구매해 상호 매출을 일으킨다. 기업끼리 서로 지분을 섞고 매출을 올려주는 이 구조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과거 복잡한 순환 출자로 덩치를 키우다 외환 위기 때 연쇄 도산을 맞은 한국 재벌 기업들이 그 예다. 순환 출자는 경제 전체에 가져오는 시스템 리스크를 확대시킬 수 있다.

둘째, 신용 시장의 레버리지 문제다. 이번 AI 붐과 닷컴 버블의 결정적 재무구조 차이는 레버리지에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용사)들은 막대한 건설 비용 부채를 특수목적기구(SPV) 형태로 사모신용펀드(private credit fund)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 이 부채는 테크 기업의 공식 장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에 쏟아부은 수천조원의 실물 투자가 적기에 이익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수십%의 감가상각을 맞게 되면, 그 손실은 신용 시장의 부실로 이어지고 실물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행인 점은 AI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의 포지셔닝이다. 미국 서부 골드러시 때 정작 돈을 번 것은 금광 업자가 아니라 청바지를 판 리바이스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AI산업의 ‘청바지’를 팔고 있다. AI 기업의 순익 창출이 지연되더라도 데이터센터에 HBM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에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닷컴 버블 학습 효과로 시장 참여자들이 이미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앞으로 기업 이익 성장성에 대해 경종이 울릴 때마다 조정은 있겠지만, 이는 시장의 과열을 식히는 건강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버블 과열에 대한 어떤 신호를 보고 대비해야 하는가다. 버블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지만 그나마 주시해야 할 신호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기업공개(IPO) 시장의 과열 여부다. 다행히 아직 미국 IPO 시장은 과열 수준은 아니다. 둘째, AI 애플리케이션 기업의 수익성이다. 이들 기업의 이익 실현이 늦어질수록 시장의 인내심은 바닥날 것이다. 셋째, 하이일드 채권 시장의 동향이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금 조달이 투자적격 등급을 넘어 투기 등급 채권 시장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이것은 크레디트 시장이 과열됐다는 신호다.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정답은 교과서에 있다. 섣불리 고점을 예단해 시장을 떠나서도, 특정 종목에 ‘몰빵’해서도 안 된다. 주식, 채권, 금 등 자산을 골고루 분산 투자하고 장기 보유하는 것만이 변동성 장세를 극복하는 검증된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