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은, 구리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 등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안전자산인 귀금속과 필수 원자재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핵심 광물 확보 정책까지 가세해 관련 상품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돈 몰리는 금·은·동 ETF
21일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지난 1주일간 금·은에 투자하는 대형 ETF에 각각 1000억원 이상이 순유입됐다. ‘KODEX 은선물(H)’에 1303억원, ‘ACE KRX금현물’에 1110억원이 몰렸다. 구리 투자 ETF 중 가장 순자산 규모가 큰 ‘TIGER 구리실물’에는 396억원이 흘러들었다. 글로벌 금 채굴기업 상승세만큼 수익을 내는 ‘HANARO 글로벌금채굴기업’에도 93억원이 순유입됐다.
ETF 추종 원자재 가격이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투자 자금 이동을 부추겼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국제 금 선물 가격은 21일 트로이온스(31.1035g)당 4874.9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 초와 비교해 12% 뛰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70% 급등했다.
정희찬 삼성선물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를 통해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재차 드러내자 지정학적 불안이 퍼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주요국에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을 반대하면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여기에다 화폐 가치 하락 우려도 금 수요를 키웠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달러 가치가 약세로 전환되고,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금의 매력은 커진다.
은과 구리는 실물 수요가 커지는 와중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간 확보 경쟁이 심해지면서 가격이 뛰고 있다. 금의 산업 수요 비중은 8%에 불과하지만 은의 수요는 절반가량이, 구리는 85% 이상이 산업계에서 발생한다. 은과 구리는 최근 고성장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광통신 인프라에서 핵심 재료로 쓰인다. 관련 수요 급증으로 은값은 지난 한 달 동안에만 41%, 구리는 약 6.7% 뛰었다. ◇주요국 확보 경쟁 가세미국은 지난해 말 은을 ‘핵심광물’로 지정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올해부터 은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연간 은 생산 능력 80t 이상, 신용한도 3000만달러 이상인 대규모 기업만 은을 수출할 수 있게 수출 통제에 나섰다. 구리는 최근 미국의 수입 관세 재검토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며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중국의 조치는 은이 일반 원자재가 아니라 전략적 소재로 격상되고, 희토류와 동일한 수준의 수출 통제가 적용된다는 의미”라며 “공급자인 중국은 자원을 통제하고, 수요자인 미국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구도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주요 금속의 가격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금속 수요가 늘고 있지만, 원자재 특성상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 가격이 현 수준에서 단기적 조정을 거칠 수는 있어도 하락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가격 조정 국면에서 매수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황병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 수요와 달러 가치 하락에 대응하는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주요 귀금속 가격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며 “가격을 끌어올려 온 구조적 동력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