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놀이터 되나…'체감 환율' 1500원 시대 구원투수는

입력 2026-01-21 15:19
수정 2026-01-21 17:25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까지 오르고 체감 환율은 이미 1500원대를 찍은 고(高)환율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오는 4월 세계채권지수(WGBI) 편입으로 외국 자금이 들어오면 환율이 다소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직접적인 환율 하락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80원40전에 출발했다. 환율이 1480원대에서 거래를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24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두 달 정도 지나면 (환율이)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말하자 1460원대 후반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기대하는 대표적인 환율 하방 압력 요인으로는 WGBI가 거론된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11월까지 560억달러(약 82조원)의 WGBI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이달 발간한 ‘WGBI 편입의 의미 및 기대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WGBI를 추종해 한국 국채를 자동으로 편입하는 패시브 자금은 월평균 약 28억~50억달러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고환율은 달러 수급 불균형에서 시작된 만큼, 기본적으로 달러 유입은 원화 약세를 안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WGBI로 들어오는 자금 대부분이 패시브 채권 자금이라는 점에서 WGBI 편입 이후에도 원·달러 환율 하락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자금인 만큼 환헤지 비중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패시브형 채권 펀드들은 AUM(운용자산)의 90%를 환헤지한다는 논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WGBI 편입으로 560억달러가 들어오더라도,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56억달러 수준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패시브 자금이 들어오면 선반영됐던 액티브 자금 유출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 순수하게 환율을 내리는 힘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중국, 멕시코, 뉴질랜드 등 사례에서 (WGBI 자금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WGBI 편입효과는 현물시장보다는 조달시장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변수다. 국채 신뢰도가 높아지면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빌리기 쉬워지는 구조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구조가 곧 달러 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민 연구원은 “WGBI는 원화 자산에 대한 장기적 신뢰를 높이는 재료는 맞지만, 당장 외환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달러를 대량으로 즉각적으로 팔게 만드는 이벤트는 아닐 수 있다”며 “실제 환율 하락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펀더멘털 차원의 고리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수급구조가 고착화돼있는 가운데, 실제 달러 매도로 이어지려면 글로벌 달러 강세 완화나 미국 금리 인하 등 추가적인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교수 역시 “외환시장의 높은 변동성, 여타 변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수편입에 따른 실제 환율효과 예상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미 투기 세력들이 붙었다는 신호마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라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잡히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민 연구원은 “투기 지표로 보는 리스크리버설이 12월말 꺾였다가 1월 들어 다시 올라갔다”며 “풋옵션(하락에 베팅)보다 콜옵션(상승 베팅) 거래가 더 많았다는 뜻이며 투기적 수요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외환시장으로 유입되지 않는 ‘달러 돈맥경화’가 문제”라며 “수출업체의 네고물량 복귀 등 돈맥경화를 풀어줄 수 있는 조치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