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한국인의 주거 패러다임
한국 사회의 주거 문화는 오랫동안 '소유'와 '단일 거점'에 집중되어 왔다.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는 것이 중산층의 목표이자 안정의 상징이었다. 30년 장기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 마련에 몰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부동산과 자본의 굴레에 갇혔다.
그러나 최근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반드시 회사 근처에 살아야 한다'라는 전제가 무너졌다. 줌(Zoom), 슬랙(Slack) 등 협업 도구의 발전으로 출근의 필요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핵심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눈치 보는 회식 문화보다 개인과 가족의 삶이 우선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구조적 전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중거점 생활'이라는 새로운 주거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뉴노마드 라이프의 등장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을 의미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하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이미 익숙하지만, 이제는 '뉴노마드(New Nomad)'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뉴노마드는 완전히 떠도는 삶이 아니라, 두 개 이상의 거점을 오가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도시에서 생산적으로 일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전원에서 충전하는 리듬. 이것이 바로 '사일도시, 삼일전원(四日都市, 三日田園)'의 뉴노마드 라이프다.
단일 거점에 묶인 전통적 정주 생활도 아니고, 완전히 떠도는 노마드 생활도 아닌,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오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 이는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가 만들어낸 21세기형 라이프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이중거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다
이중거점(Dual Base)이란 도시와 전원, 두 곳에 생활 거점을 두고 주중과 주말을 나누어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다. 미국의 경우 중산층 이상 가구의 상당수가 도심 주택과 별장을 동시에 소유하며, 일본에서도 '2거점 생활(二?点生活)'이 지방 창생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이제 이중거점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됐다. 기술적으로는 원격근무 인프라가 갖춰졌고, 사회적으로는 유연근무제가 확산하고 있다. 교통 인프라 또한 개선돼 서울-강릉이 2시간, 서울-부산이 2시간 30분대로 단축됐다. 주4일제 논의가 활발해지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주택 한 채를 마련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두 개의 거점을 갖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여기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공동 소유 모델의 가능성
필자가 설계한 강릉에 조성된 공동 별장 '윤원'은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한다. 두 가구가 공동으로 토지를 구입하고 각각 독립된 건물(각 동 약 50평 규모)을 지어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토지 매입비, 건축비, 유지관리비를 절반씩 나누면서 개별 가구의 경제적 부담은 크게 줄었고, 각자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 프라이버시도 보장받는다.
이는 새로운 주거 모델이다. 혼자서는 부담스러운 별장 마련이 둘이서 나누면 충분히 가능해진다. 주말에만 사용하는 공간이기에 큰 평수가 필요 없고, 관리도 분담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이 있다.
이러한 공동 소유 모델은 다양한 형태로 확장할 수 있다. 여러 가구가 전원주택을 공동 장기 임대하는 '공유형', 한 건물을 주중/주말로 나눠 사용하는 '시간 분할형', 같은 지역에 각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느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클러스터형'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뉴노마드 라이프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들이다.
공간이 만드는 경쟁력
필자는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건축가이자 대표로서 어느 정도 시간적 자율성이 있지만(물론 365일 24시간 업무와 건축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이러한 생활 방식이 업무 효율성과 창의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체감한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공간이 주는 힘'은 명확하다.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행복감과 창의성은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정신 건강과 업무 생산성 역시 주거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건축가로서 필자는 도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도시의 밀도, 에너지, 복잡성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원의 고요함과 자연의 리듬도 필요하다. 술자리 후 귀가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으며 별빛을 올려다보는 순간의 낭만(아내는 걱정하지만)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이 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 관계다. 도시에서의 4일이 생산적일 수 있는 이유는 전원에서의 3일이 충전을 제공하기 때문이고, 전원에서의 휴식이 의미 있는 이유는 도시에서의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뉴노마드 라이프의 핵심이다.
정책적 시사점과 과제
이중거점 생활의 확산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 소유 및 공유 주택에 대한 법적·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 현행 부동산 세제는 개인 단독 소유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공동 소유 시 세금 부담이나 권리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
둘째, 원격근무 문화의 정착을 위한 기업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주4일제나 유연근무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출근=근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중거점 인구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지방 자치단체들이 2거점 생활자에게 주택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며 인구 유입을 도모하고 있다.
넷째, 교통 인프라의 지속적 개선이 필요하다. 도시와 전원 사이의 이동 시간이 단축될수록 이중거점 생활은 더 현실적이 된다.
사일도시, 삼일전원의 시대
사일도시, 삼일전원. 이는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주거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
무엇보다 뉴노마드 라이프는 한국이 직면한 두 가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첫째, 지방 소멸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방은 급속도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지방대학 육성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뉴노마드 라이프는 완전한 이주가 아닌 '부분 거주'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한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지방에서 생활하는 이중거점 인구가 늘어나면, 지방은 새로운 경제적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주말 체류자들은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고,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며, 지역 문화와 커뮤니티에 참여한다. 완전히 떠나보낸 인구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반(半)정주 인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수도권에서 KTX로 2시간 내 접근할 수 있는 강릉, 전주, 경주 등이 충분히 뉴노마드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시대의 라이프스타일 전환에 대한 솔루션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가치관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소유보다 경험, 출세보다 워라밸, 물질적 성공보다 정신적 풍요. 그러나 기존 주거 시스템은 여전히 '서울 아파트 소유'라는 단일한 목표에 갇혀 있다.
뉴노마드 라이프는 이러한 가치관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시한다. 30년 대출에 묶여 하나의 집에 갇히는 대신, 공동 소유나 장기 임대를 통해 경제적 부담은 줄이고 공간적 자유는 늘린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자연에서 충전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실질적으로 실현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이기도 하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공동화라는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동산 투기 대신 실거주와 경험 중심의 주거 문화를 만들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뉴노마드 라이프가 한국 사회에 제시하는 비전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직업의 특성, 가족 구성, 경제적 여건에 따라 제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사회적 환경이 이미 조성된 만큼, 이제는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공동 소유에 대한 법적·제도적 틀 마련, 유연근무제의 실질적 정착, 지방 정부의 이중거점 인구 유치 정책, 교통 인프라의 지속적 개선. 이러한 정책적 뒷받침이 뉴노마드 라이프를 선택지가 아닌 대안으로 만들 것이다.
하나의 집, 하나의 공간에 갇히지 않는 삶. 도시와 전원을 자유롭게 오가며 일과 휴식의 균형을 찾는 삶. 부동산의 노예가 아니라 공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
사일도시 삼일전원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지역의 활력,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이다. 준비할 시간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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