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21일 10:4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익을 내는 능력은 뛰어난데, 그 성과가 주주에게 충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제도와 관행이 그 구조를 오래 방치했다."
한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리고 미국 주식으로 옮겨간 배경에는 이런 불만이 깔려 있었다. 낮은 주주환원은 '박스피'의 원인으로 반복적으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상법 개정 논의와 세제 개편 이슈가 맞물리면서, 한국 증시에 오랫동안 눌려 있던 밸류에이션이 되레 '올라갈 공간'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변화의 수혜 축으로 주주환원 고배당주를 꼽는다. 현재의 낮은 밸류에이션이 역설적으로 향후 리레이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주주환원고배당주'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 상품도 주목받고 있다.
환원율 29%의 의미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기준 한국 기업의 총주주환원율은 평균 29% 수준이다. 미국 92%, 선진국 평균 68%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다만 업계는 이 숫자를 단순히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핵심은 '낮은 환원율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커졌는가'다. 만약 한국 시장의 환원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그 과정에서 주가 재평가(리레이팅)가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환원율이 낮다는 사실 자체가 ‘상승 여력(업사이드)’의 근거로 전환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 기업들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배경으로는 흔히 '대주주가 배당을 싫어한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시장에서는 보다 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본다.
우선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보다 지배력 방어에 활용되던 관행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인적분할 등 특정 구조에서 의결권이 부활하는 방식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쓰였다는 비판이 있었다. 흔히 '자사주 꼼수' 혹은 '자사주 마법'이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다.
또 다른 요인은 세금이다. 배당이 늘어나면 주주는 현금을 받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배당소득에 대한 세 부담이 커진다. 최고세율이 높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던 만큼, 배당 확대는 '주주에겐 좋은데 대주주에겐 불리한 선택'으로 취급돼왔다.
한국판 SCHD의 함정지금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 제도 변화로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촉매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논의다.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하는 방식으로 세율 부담이 낮아질 경우, 대주주 관점에서 배당은 더 이상 피하고 싶은 항목이 아니라 받는 게 유리한 현금흐름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상법 개정 이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는 방향의 개정이 이뤄지면서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보다 지배력 방어 목적에만 쓰는 행위는 법적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기업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를 검토하게 된다.
배당 투자 열풍 속에서 '한국판 SCHD'를 내건 상품들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성과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지 못했던 이유도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업들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주주에게 되돌려주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아, 꾸준히 배당을 늘리는 기업을 고르는 '배당성장' 논리가 잘 작동한다. 반면 한국은 평균 환원율이 낮아 배당정책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고, 배당수익률만 보고 접근하면 일시 고배당이나 주가 하락으로 배당률이 높아 보이는 종목, 이른바 '배당 함정'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시장에서는 단순히 배당이 늘었는지보다, 환원율이 정상화되는 국면에서 가장 큰 리레이팅이 가능한 종목을 선별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주주환원고배당주 ETF'는 이런 '한국형 리레이팅' 논리를 전면에 둔 상품이다. 기초지수 기준으로 보면, 코스피200과 비교해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약 40% 낮은 반면 ROE(자기자본이익률)는 약 2%p 높고, 배당성향 등 배당 관련 지표는 코스피200 대비 2배 이상 수준으로 구성됐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관련 종목군의 밸류에이션은 매력적인 구간"이라며 "제도 변화가 실제로 안착한다면, 한국 시장은 리레이팅 국면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주주환원형 상품이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