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설계와 제조를 넘어 검사 공정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품질 확인 단계에 머물렀던 검사 공정이 이제는 칩의 수율과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일본의 어드반테스트(Advantest)가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가속기 검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EUV 장비를 제조하는 네덜란드 ASML에 버금가는 반도체 공급망의 '슈퍼을(乙)'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2년 새 주가 3배 '폭등'
일본 도쿄거래소에 상장된 어드반테스트의 주가는 지난 1년간 기록적인 랠리를 이어왔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5000엔대에서 움직였던 주가는 9개월여 만인 10월30일엔 2만3675엔까지 치솟았다. 9개월 새 370%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올해 들어선 2만2000엔대를 오가며 21일 종가는 2만1770엔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 순위도 20위권 밖에서 10위까지 오르면서 일본 대표 IT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시총은 16조 6789억엔(155조 2321억원)으로, 세계 3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의 19조 4360억엔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9개월간 도쿄일렉트론의 시총이 14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어드반테스트의 몸값이 훨씬 더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일본 증시에서 10위권 내 IT업종은 소니와 도쿄일렉트론, 어드반테스트가 포함돼 있다.
실적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일본 회계기준 2분기)은 1조139억원(1084억 엔)을 기록해 전년 동기 636억엔(5949억원) 대비 70.6% 급증해 시장 기대치를 14% 이상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1905억 엔(1조7819억원)에서 2630억 엔(2조4600억원)으로 38.1% 증가했다.
어드반테스트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글로벌 반도체 거인들이 이 회사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어서다. 엔비디아와 AMD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검사는 어드반테스트의 몫이다.
어드반테스트가 단기간 내 급성장한 건 글로벌 반도체 거인들이 이 회사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어서다. 엔비디아와 AMD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검사는 어드반테스트의 몫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 역시 HBM의 수율을 잡기 위해선 어드반테스트의 장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글 등 자체 AI 칩을 설계하는 미 빅테크 기업도 어드반테스트의 고객사다. 올해 전망도 밝아1954년 타케다 리켄 공업으로 출발한 어드반테스트는 지난 70년간 전자 계측 및 반도체 검사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온 기업이다. 주요 사업은 반도체 자동 테스트 장비(ATE)와 이를 지원하는 메카트로닉스 시스템(핸들러 등)이다.
어드반테스트가 AI 시대에 핵심 기업으로 떠오른 건 AI 반도체 테스트 장비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AI 반도체는 일반 칩보다 설계가 복잡하고 적층 구조를 지녀 검사 항목이 수 배 이상 늘어났다. 동일한 수량의 칩을 생산하더라도 더 많은 테스터 장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경쟁사인 미국 테라다인이 모바일이나 범용 시스템온칩(SoC) 테스터에 강점을 가진 것과 달리, 어드반테스트는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와 AI 가속기용 초정밀 테스터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식재산권(IP)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HBM3E와 차세대 HBM4 시장에서 어드반테스트 장비는 표준으로 통용되며 시장 점유율 60~70%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다. 올해 주력이 될 6세대 HBM인 HBM4는 로직 공정이 결합되는 제품 특성상 테스트 난이도가 더 높아져 검사 장비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서다. 어드반테스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생산 능력을 2024년 대비 7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어드반테스트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노무라와 골드만삭스 등은 2026년 어드반테스트의 영업이익이 3500억 엔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다시 쓸 것으로 내다봤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