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경영, 새로운 정책목록이 아니라 행정의 가치체계”

입력 2026-01-20 06:00
[한경ESG] 커버 스토리2 - 지방자치단체의 지속가능경영은
⑤-3 전문가 기고
사득환 경동대 교수



ESG라는 말은 아직도 많은 시민에게 낯설다. 기업 보고서나 투자 뉴스에서나 등장하는 용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ESG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일상과 직결된 개념이며, 앞으로 도시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도시안전과 행정에 대한 투명성 위기는 더 이상 개별 부서나 단일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 문제는 서로 얽혀 도시 전체의 작동방식과 행정의 가치체계를 동시에 시험하는 복합적 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행정에 도입해 온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ESG를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고유한 ESG 모델을 갖추었는가’라는 질문이다.

ESG는 본래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평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지방정부의 정책설계와 행정운영을 평가하는 핵심기준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행정영역에서 ESG를 단순히 기존 정책을 분류하거나 나열하는 틀로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서울시 ESG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개별 사업이나 부서 중심의 ESG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도시단위 ESG”이다.

서울은 이미 기후예산제, 탄소중립 정책, 사회적 약자 보호, ESG 기업 우대, 시민참여 거버넌스 등에서 ESG적 요소를 선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중소기업 ESG 경영 지원과 산하 공공기관 ESG 경영평가 전면 실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지 못한 채 분절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형 도시 ESG 모델은 이들 정책을 묶어내는 ‘상위 프레임’이자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운영체계여야 한다.

무엇보다 ESG는 새로운 정책목록이 아니라 행정의 가치체계여야 한다. 정책을 선택하고, 예산을 배분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 전반에 ESG가 기준으로 작동할 때 행정은 일관성을 갖는다. ESG가 특정 부서의 업무로 한정되는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유행어로 소모될 뿐이다. 서울형 ESG 모델은 ESG를 행정의 언어로 내재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서울시 ESG 행정은 선언이나 지표 나열을 넘어 문제해결 중심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폭염과 침수, 돌봄 공백, 주거 불안, 차량중심의 보행환경, 행정불신은 모두 ESG와 직결된 도시문제이다. 환경(E)은 규제 중심에서 지속가능성과 성과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사회(S)는 복지의 양이 아니라 시민 삶의 안정성과 포용행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거버넌스(G) 역시 절차의 투명성을 통해 정책과정에 대한 시민신뢰가 실제로 축적되고 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와 AI는 서울형 도시 ESG 모델의 핵심도구가 된다. 서울시는 방대한 도시 데이터를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스마트시티이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ESG 성과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정책효과를 예측하며, 취약영역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데이터 기반·AI 기반 ESG 행정은 효율성을 넘어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한편, 도시 ESG는 지방정부 혼자서 완성할 수 없다. 시민, 기업, 대학, 금융기관과의 민관협력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며, 동시에 글로벌 도시들과의 국제 연대도 중요하다. 서울형 도시 ESG 모델은 국내 행정혁신을 넘어 세계 도시들이 참고할 수 있는 공공모델로 발전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SG 성과는 보고서를 채우는 숫자가 아니라 도시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서울형 도시 ESG 모델의 성패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도시에서 사는 것이 지난해보다 더 나아졌고, 더 안전하고, 더 공정하며, 더 지속가능해졌는가?”

이제 서울시는 이 질문에 비전이 아니라 구조와 데이터로 답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왜냐하면 ESG 행정은 시민 삶을 점검하는 기준이며, 도시의 방향을 나타내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울의 ESG 행정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득환 경동대 교수(한국공공ESG학회 회장, 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