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청년 인재에 대한 생각

입력 2026-01-19 17:35
수정 2026-01-20 00:06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권은 늘 ‘인재’를 찾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4년 초도 다르지 않았다. 각 정당은 경쟁하듯 인재 영입 행사를 진행했다. 나는 이미 출마 선언을 하고 예비후보로 선택받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과 언론의 집중 조명 속에서 선거의 시작을 알리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영입 인재도 아닌데 왜 이곳에 출마하느냐”는 주민의 물음에 “이미 영입되어 있는 인재입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건 선거철에 영입된 인재들 못지않게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동시에 영입 인재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중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청년 인재 영입이다. 20대와 30대가 정치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조사와 통계를 통해 알려져 있다. 다만 ‘관심을 덜 갖는다’보다는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청년들은 학업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취업이라는 더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에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생업 전선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벅찬 현실 속에서 정치는 늘 뒤로 밀린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력이 부족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재 영입이라는 과정은 청년들의 시선을 단번에 끄는 장치가 된다. 동시에 기회의 불공정이나 과도한 특혜로 비칠 위험도 커진다. 그렇기에 더욱 경계가 필요하다.

2025년 대통령선거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 어설픈 사람을 영입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청년 인재 영입 행사는 기획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모든 청년이 공감할 만한 인재를 찾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동시에 국가와 지역, 당을 위해 자기 삶을 묵묵히 바치고 있는 청춘들 가운데 옥석을 가려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겨 달라고도 요청했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청년에게 상실감을 안긴다면 그 부작용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마하는 청년에게는 늘 설명이 따라붙는다. 누구 옆에 있었는지, 누구를 따라다녔는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가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특히 청년에게 이 잣대는 더욱 가혹하다. 왜 정치에 나섰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기회를 얻었는지를 먼저 묻는다. 선거철마다 수많은 청년을 병풍처럼 세워두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외면하는 현상 역시 이러한 인식 위에서 반복된다. 준비되어 있고 실력 있는 청년을 대하는 정치권과 정당의 태도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우리 동네에 젊은 청년이 정치에 도전하겠다고 나선다면 먼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온 사람인지를 궁금해해 주길 바란다. 누구의 이름 뒤에 서 있었는지는 그다음이어도 늦지 않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시대의 고민을 전할 수 있도록, 청년 인재들을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보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