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오는 3월부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1공장에서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시험 가동(턴온)에 들어간다. 삼성은 식각·증착 장비를 차례로 들여와 올 하반기 본격 가동에 나선다. 삼성의 첫 해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인 이곳에서는 지난해 7월 수주한 23조원 규모의 테슬라 자율주행 칩(AI5 및 AI6)을 생산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조만간 현지 주정부와 테일러시에 1공장의 임시사용승인(TCO)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TCO는 소방·안전 등 각종 요건을 갖추면 준공 전에도 사용을 허가하는 행정 절차다. 삼성은 테일러 공장의 빠른 수율 안정화를 위해 본사 에이스급 엔지니어 등을 현지에 대거 보냈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열풍이 부른 메모리 슈퍼 호황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공장 가동 시점을 내년 5월에서 2~3개월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기 공장이 가동되면 SK의 D램 생산량은 월 60만~70만 장(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확대돼 삼성전자(약 65만 장)와 맞먹는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투톱’의 국내외 핵심 공장이 올 하반기와 내년 초 가동에 들어가면 K반도체의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가동' 막바지 공사 한창…평택·화성공장 합친 것보다 커
오피스동엔 1000명 근무 시작…향후 공장 추가 건립도 검토지난 10일 찾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건설 현장은 1년 전 이맘때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건물마다 달라붙어 있던 크레인은 거의 다 사라졌고, 텅 비었던 주차장은 온갖 브랜드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막바지 공사를 맡은 인력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각종 반도체 장비를 들이기 위한 협력업체 인력이 더해진 결과다. 현지에서 만난 공사업체 관계자는 “하루평균 투입되는 현장 인력만 7000여 명에 이른다”며 “올 하반기 준공을 앞두고 6층짜리 오피스 빌딩은 이미 1000여 명이 근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테슬라 수주 후 공사 진척 속도
테일러 공장은 부지 규모만 약 485만㎡로, 삼성 반도체의 본산인 경기 평택공장(289만㎡)과 화성공장(157㎡)을 합친 것보다 크다.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늦어졌지만 삼성은 국내에 공장을 지을 때보다 훨씬 빠른 4년 만에 테일러 공장을 완공하기로 했다. 삼성은 하반기 본격 가동을 위해 테일러 공장의 차별점인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첨단 공정’에 필요한 EUV 장비를 오는 3월부터 시험 가동하기로 했다. 네덜란드 ASML이 만드는 EUV 장비는 대당 5000억원이 넘는 초고가 반도체 장비다.
초기 생산 물량은 확보해 둔 상태다. 작년 7월 테슬라로부터 따낸 165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차세대 자율주행 반도체(AI5 및 AI6)를 이곳에서 만든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계약 당일 X에 “165억달러는 최소 규모로 실제 생산량은 몇 배 더 많을 것 같다”고 언급한 만큼 추가 수주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퀄컴의 차세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생산을 테일러 공장에서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5일 ‘CES 2026’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삼성에 차세대 AP 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고객사가 늘어나면 테일러 2공장 가동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초 공사가 한창인 2공장은 빅테크 수요를 염두에 두고 짓는 ‘확장 기지’ 성격이 크다. 삼성은 인공지능(AI) 열풍 여파로 파운드리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테일러 부지에 공장 10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했다. ◇추가 수주 위한 2㎚ GAA 승부수
업계에서는 ‘첫 손님’인 테슬라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삼성이 충족하느냐가 추가 수주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하면 대만 TSMC에만 매달리던 칩 생산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빅테크의 발주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TSMC가 애플, 엔비디아 등에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해 칩을 제때 받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70%를 장악한 TSMC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는 것도 이들에겐 불만이다.
그런 만큼 실력만 검증되면 삼성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빅테크 수주가 이어지면 지난해 3분기 6.8%에 그친 삼성 파운드리의 시장점유율도 큰 폭으로 오를 전망이다.
빅테크를 잡기 위한 삼성의 승부수는 차세대 공정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적용한 2㎚ 초미세 공정을 테일러 공장에 도입한 것이다. AI가 고도화하면서 최첨단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 당초 4㎚ 공정을 적용하려던 계획을 틀었다. 삼성이 개발한 GAA는 기존 핀펫 공법보다 전류 흐름을 정밀하게 조절해 전력 누수를 막고 효율을 높인 공법으로, 초미세 공정의 필수 기술로 꼽힌다. 삼성은 3㎚ 공정에 도입해 성과를 입증한 GAA를 테일러 공장의 2㎚에 투입해 미국 공장에 4~5㎚ 공정을 들인 TSMC와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관건은 수율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대만 공장에서 2㎚ 양산에 들어간 TSMC는 70~90%의 수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2㎚ 파일럿 라인 수율은 아직 여기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투입해도 양산 수율이 낮으면 빅테크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이 테일러 공장에 최첨단패키징(AVP) 시설을 추가할지도 관심사다. 삼성은 당초 테일러 공장에 AVP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2㎚ 공정에 올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빅테크의 문의가 늘어나자 AVP 투자 여부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공정과 메모리, 패키징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턴키 솔루션’을 앞세워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테일러 공장에 AVP 시설을 지으면 파운드리와 패키징을 현지에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테일러=김채연/용인=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