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배임죄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인정 범위가 가장 넓을 뿐만 아니라 처벌 수위 역시 ‘살인죄’ 못지않은 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처벌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강도 높은 형사 규제를 유지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15일 한국경제인협회 등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형법상’ 배임죄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사가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이를 기본적으로 사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 절차를 통해 책임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강력하게 적용한다.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의에 따라 내린 결정이라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사법부가 그 경영적 판단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기업가가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부담 없이 사업을 확대할 발판이 된다.
한국과 법 체계가 비슷한 독일과 일본도 배임죄 적용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일은 배임죄의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으며, 한국처럼 업무상 배임죄나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별도로 두고 형량을 가중하지도 않는다. 독일 내에서 배임죄가 적용된 사건 자체가 매우 드문 이유다. 일본 역시 자신 및 제3자의 이익을 꾀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려는 명확한 가해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형량도 무겁다. 일반배임과 업무상 배임을 비롯해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법(특경법)상 가중처벌 규정까지 겹겹이 쌓여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특경법상 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이는 형법상 살인죄(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의 하한선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런 법 규정은 빈번한 고발과 높은 무죄율로 이어지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의 배임죄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월등히 높다. 일반 형사사건의 평균 무죄율은 약 2.2%(2009년 기준)인 반면 손해액 5억원 이상의 특경법상 배임 사건 1심 무죄율은 15.6%에 달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