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분석 비용 낮아져…판단력이 중요

입력 2026-01-15 16:57
수정 2026-01-16 00:18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시장에서 판단이 늦어질 때 원인은 대개 정보 부족이 아니다. 정보는 이미 넘친다. 문제는 판단에 쓰이는 에너지다. 무엇을 먼저 검증할지 등을 정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커지고 결정이 느려지며 성과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런 혼란은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월가의 채권 트레이더 책상 위엔 이미 정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녹색 글씨가 깜빡이던 텔러레이트 단말기에서 시세를 확인하고, 로이터 모니터로 뉴스를 봤다. 계산은 HP-12C 같은 재무 계산기가 맡았다. 시세와 뉴스, 계산기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사고의 흐름이 끊겼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한 건 이런 흐름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시세, 뉴스, 계산을 한 화면에 올렸다. 데이터만이 아니라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동선을 줄였다. 블룸버그는 생각이 흘러가는 경로를 정리해 판 셈이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풍경도 다르지 않다. 대규모언어모델(LLM) 덕분에 분석 자체의 비용이 급감했다. 같은 자료를 던져놔도 수십 개의 그럴듯한 해석이 쏟아진다. 하지만 가치 있는 정리는 요약과 거리가 있다. 중요한 건 해석의 폭을 줄이는 일이다. 틀린 방향을 빨리 버리도록 만드는 구조다.

일부는 다시 워크플로를 만지고 있다. 시타델과 맨그룹이 대표적이다. 시타델은 ‘자료가 흩어져 판단이 늦어진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공시 자료와 실적 콘퍼런스콜, 연구 보고서 등 흩어진 정보를 AI로 정리하되, 기존 리서치 흐름 안에 묶었다. 맨그룹은 아이디어가 너무 쉽게 쏟아지는 문제를 고민했다. 가설 생성과 구현은 자동화하되, 자금 집행 전엔 인간이 설계한 엄격한 검증 관문을 통과하도록 했다. 한 곳은 판단을 앞당기려 하고, 다른 곳은 늦추는 지점을 만들었다.

AI 시대에 가장 똑똑한 모델이 주목받는 건 자연스럽다. 수많은 후보를 걸러내고, 중요하지 않은 신호를 덜며, 판단을 앞당긴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다음 변화는 워크플로다. 시작점은 무엇을 보지 않아도 되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홍세화 한경에이셀 리서치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