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이 '두뇌' 고르는 시대[테크트렌드]

입력 2026-01-28 09:36
수정 2026-01-28 09:37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공장, 물류창고 등 현실 세계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현실 세계에 적응하려면 완벽한 몸만으로는 부족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두뇌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 기업들은 개발 속도는 높이고 투자 부담은 줄이기 위해 AI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기업과 AI 기업 간 협력 확대 추세과거에는 로봇 기업이 필요한 AI를 직접 개발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휴머노이드 기업이 필요한 수준의 AI를 직접 개발하기엔 부담이 너무 커졌다. 우수한 AI 인력 확보, 데이터 수집, AI 개발에 최소 수조원 규모의 투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AI 기업은 로봇이라는 물리적 몸체 없이는 AI의 성능을 검증하고 사업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휴머노이드 기업과 AI 기업 간의 협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 간 협력 방식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몸-두뇌-근육’을 모두 아우르는 완전체를 만들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협력이 있는가 하면, 공통 AI 플랫폼 위에 여러 휴머노이드를 적용하려는 협력도 있다.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 같은 협력 방식의 차이는 전략 차이를 넘어 휴머노이드 산업의 미래 지형도를 결정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몸-두뇌-근육’을 하나로 묶은 완전통합형2024년 현대자동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내놓은 청사진은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자사 공장에 투입하겠다는 산업 혁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틀라스가 제조 현장에서 복잡한 지시를 이해하고 수행하려면 고차원 인지와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대차는 구글 딥마인드, 엔비디아와 아틀라스에 필요한 두뇌의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이 협력의 핵심은 세 기업이 각자 강점을 살려 완전히 다른 층위를 담당한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몸’과 ‘현장’을 책임진다. 2026년 가동 예정인 RMAC는 아틀라스가 공장에 투입되기 전 작업을 검증하는 허브다. 구글 딥마인드의 제미나이 로보틱스(Gemini Robotics)가 ‘상위 두뇌’를 맡아 작업 지시 이해와 계획 수립을 담당한다. 엔비디아는 아이작그루트(Isaac GROOT) 플랫폼과 옴니버스(Omniverse) 디지털트윈으로 ‘학습 인프라’를 제공하며 젯슨토르(Jetson Thor) 칩으로 실시간 동작 조정을 지원한다.

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구글-엔비디아 협력은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수직통합전략의 대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드웨어부터 고수준 AI, 학습 인프라, 실제 적용 현장까지 전 밸류체인을 하나로 묶었다. 장점은 데이터 순환과 즉각적인 최적화다. 반면 외부 개발자 참여가 어렵고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는 단점도 명확하다. 현대차 주도의 3자 협력은 휴머노이드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첫 번째 대규모 레퍼런스가 될 가능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다. 공용 AI 플랫폼을 추구하는 개방형 협력휴머노이드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데이터 부족이다. 로봇이 복잡한 작업을 학습하려면 수백만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실제 하드웨어로는 비현실적이다. 엔비디아는 PC 시대에 윈도가 공용 OS로 쓰였듯이 휴머노이드에도 공용 AI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24년 발표한 아이작그루트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그루트 에코시스템의 핵심은 ‘시뮬레이션 기반 대량 학습과 배포’가 일체화된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실제 로봇으로 백번 연습하는 대신 옴니버스에서 100만 번 연습한다. 학습된 모델은 특정 로봇에 종속되지 않는다. 휴머노이드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로봇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제각각 상이한 구조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는 피규어AI(Figure AI), 어질리티로보틱스(Agility Robotics), 앱트로닉(Apptronik) 등 주요 휴머노이드 기업들의 공통점은 아이작그루트를 채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엔비디아는 그루트를 발판 삼아 휴머노이드 생태계의 설계자이자 지휘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그루트 생태계 방식은 확장성 측면에서 우수하다. 수십 개 업체가 같은 AI 플랫폼을 공유함에 따라 학습 데이터도 공유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단점은 엔비디아에 대한 휴머노이드 기업들의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술 표준이 자리 잡기 전에 사실상의 표준을 선점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협력 방식이 성과를 거두면 향후 엔비디아는 휴머노이드 시장의 경쟁 구도를 좌우할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을 단말기로 삼는 클라우드 AI 개발 협력휴머노이드의 두뇌를 로봇 자체에 탑재할 것인지 클라우드에 둘 것인지는 당면한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생추어리AI(Sanctuary 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후자를 택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피닉스(Phoenix)와 카본(Carbon)은 가벼운 센서와 액추에이터만 탑재하고 복잡한 인지와 판단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주르(Azure) 클라우드에서 처리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로봇에 고성능 컴퓨팅을 탑재하면 무게와 사용 전력이 늘고, AI 모델 업그레이드는 어려워진다. 반면 고성능 컴퓨팅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하면 AI 모델을 업데이트하는 즉시 모든 휴머노이드가 동시에 똑똑해진다. 예를 들어 휴머노이드 피닉스가 센서로 수집한 데이터를 아주르 클라우드로 전송하면 클라우드에 탑재된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행동계획을 생성한다. 핵심은 클라우드의 막강한 연산 능력과 집단 지능 효과다. 한 로봇이 학습한 지식이 클라우드에 축적돼 다른 로봇들도 즉시 활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생추어리AI 간의 협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휴머노이드를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 AI를 ‘소유’가 아닌 ‘구독’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협력 방식의 장점은 지속적인 진화 가능성이다. 로봇 하드웨어는 5년 이상 사용하더라도 AI 모델은 매달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단점은 지나치게 커질 네트워크 의존성과 보안·프라이버시 우려다. 사용자 입장에서 모든 데이터와 정보를 타사와 공유하는 클라우드에 탑재하므로 보안, 프라이버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 AI 개발 방식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휴머노이드를 대중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로 보이기 때문이다. 월 구독료 방식은 휴머노이드 도입 부담을 줄이므로 휴머노이드 고객군을 중소 기업으로 확장하기에 효과적이다. 협력 방식에서 엿보이는 차별적 미래 전략각 개발 방식의 초점은 다르다. 완전 통합형 개발 협력은 어떻게 전체 밸류체인을 최적화할 것인가에, 개방형 파운데이션은 어떻게 산업 전체를 빠르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클라우드 AI 개발 방식은 어떻게 휴머노이드를 대중화할 것인가에 방점을 뒀다고 볼 수 있다. 휴머노이드 산업의 미래가 어느 하나의 개발 방식으로 수렴할 가능성은 낮다. PC 시장에서 애플의 수직 통합과 윈도의 개방형 플랫폼이 공존해 왔듯이 휴머노이드 시장에서도 다양한 협력 유형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업이 선택할 협력 유형은 자사의 강점, 목표 시장, 보유 자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글로벌 제조기업이라면 완전 통합형이, AI 스타트업이라면 개방형 플랫폼이, 물류·서비스 기업이라면 클라우드 구독 모델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