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매년 1월 말이 되면 국내 대형로펌 내부에선 큰 긴장감이 감돈다. 작년 한 해 동안 누가 장사를 잘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매출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대형로펌의 경우 외부 감사 결과나 구체적인 수익구조를 공시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액을 기준으로 매출이 노출된다.
올해도 1월 25일 부가세 기한 전후를 앞두고 주요 로펌들이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 매출 집계를 마치면서 그 결과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형로펌들끼리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매출 순위 다툼을 예고해 와 더욱 주목도가 높았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니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으로 이어지던 구도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태평양이 2위를 탈환한 가운데 세종이 새롭게 빅3에 진입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김광태(김앤장·광장·태평양)’냐 ‘김태광(김앤장·태평양·광장)’이냐. 지난 수년간 굳어져 온 로펌 업계 매출 순 위는 늘 둘 중 하나였다. 압도적 매출을 기 록 중인 김앤장의 뒤를 잇는 로펌은 광장 또는 태평양이었다. 괜히 세 로펌을 두고 업계 빅3라는 표현이 붙여진 것이 아니다. 매해 광장과 태평양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누가 매출 2등을 차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작년에는 마침내 이런 흐름이 깨지고 말았다. 세종이 매출 4300억원을 돌파하며 업계 3위로 올라서는 대약진을 이뤄낸 것이다. 율촌도 단숨에 매출 4000억 고지를 점령하며 언제든 업계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예고했다.
매출 2위는 태평양이었다. 로펌 업계에 따르면 태평양은 2025년 4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4000억을 돌파했다.
앞서 지난 2024년 로펌 업계 최초로 매출 4000억 고지를 정복했던 광장의 경우 작년 4300억원대 초반 매출을 기록했다. 2위 자리를 내준 것은 물론 세종에도 밀리면서 4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5위는 율촌으로 4000억원대 초반의 매출을 기록하며 앞선 로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완전히 무너진 빅3 구도많은 로펌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결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의 2위 탈환보다도 세종과 율촌의 빠른 성장에 업계는 더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냉정하게 매출로만 따졌을 때 세종과 율촌은 광장·태평양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광장·태평양과 세종·율촌의 매출 차이는 무려 100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통상적으로 로펌 업계에서는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로펌들을 대형로펌으로 보고 있다.
한편 빅3 재편 경쟁과는 별개로, 매출 총액 기준 6위인 화우의 행보 역시 업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화우는 2025년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 매출 2812억원,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포함한 총매출 3012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매출 3000억원 시대’에 진입했다. 최근 2년간 매출 성장률은 35%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액(RPL)은 7억6200만원으로 대형 로펌 중 1위를 기록하며 ‘양적 규모보다 질적 효율’ 중심 성장 모델을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런 매출 차이를 감안했을 때 다른 로펌을 인수합병(M&A)하지 않고서야 세종·율촌이 광장·태평양을 따라잡는 것은 힘들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출 추이에도 나타나듯이 어느 순간부터 4개 로펌의 격차는 매년 빠르게 좁혀지더니 작년에는 마침내 비등비등한 상황에까지 놓이게 됐다.
그렇다면 세종·율촌이 이처럼 빠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적극적인 인재 영입을 앞세운 전문성 강화가 공통분모로 꼽힌다. 일단 두 로펌은 수년 전부터 빠르게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유통 채널 기업 매출이 매장 면적 및 점포 수가 좌우하듯이 로펌도 변호사 수에 따라 매출이 늘어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에서 평판이 좋거나 실력이 뛰어난 이들을 영입하는 데 열을 쏟았다. 두 로펌을 두고 법조계에서 ‘인재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대형로펌들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사내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두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친절하면서 신속한 일처리로 정평이 자자하다. 한경비즈니스가 매년 한국사내변호사회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서비스 평가 설문에서도 두 로펌은 항상 1~2위를 다퉈왔다. 예컨대 세종은 고객 만족이라는 원칙을 조직 전반에 깊이 내재화하고자 2024년부터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를 앞세워 서비스 강화를 위해 실행해야 할 과제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화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화우 역시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과 동시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병행하며 고효율 수익 구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화우는 대규모 인력 확충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지표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며 RPL 기록한 점은 업계에서 주목받는 대목이다.
평판도 최고인 세종과 율촌이런 노력은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작년 두 로펌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규모가 큰 굵직한 사건들을 수임하는 데 성공하며 위상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먼저 세종의 경우 지난해 M&A 분야에서 큰 강점을 보였다. 여러 매체가 집계하는 리그테이블에서 김앤장과 함께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알리익스프레스·신세계그룹 온라인 플랫폼 합작법인 설립(6조원)부터 아워홈 대주주의 아워홈 경영권 지분의 한화그룹으로의 매각(8600억원),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경영권 인수(9000억원)와 교보생명의 소수지분 양수도 거래, 웰투시PE의 에스아이플렉스 인수(4300억원) 거래 등 굵직한 거래를 모두 세종이 관여했다.
자본시장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사건도 도맡았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영풍·MBK 연합을 대리했으며 한미약품그룹의 주주 간 분쟁, 콜마 경영권 분쟁, 민희진(어도어) 대표 소송 등도 수행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율촌은 주요 로펌 중 가장 신속하게 고객들의 니즈에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권 분쟁 및 적대적 M&A에 대응한 ‘경영권분쟁·기업승계 자문센터’, 노란봉투법 이슈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란봉투법 대응센터’ 등 작년에만 총 7개의 전문 센터를 만들었다.
이런 기반들을 토대로 다수의 굵직한 사건들을 싹쓸이하며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율촌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세기의 이혼’ 소송에서 상고심부터 최 회장 측을 대리해 파기환송이라는 결과를 받아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화우는 실제 업무 실적에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한 2500억원 규모 계약금 반환 소송 승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사건에서 삼성물산 경영진 전원 무죄 판결 유지, ELS 불완전판매 소송에서 주요 시중은행 전부 승소 등 대형 금융·기업송무에서 연이어 성과를 냈다. 기업자문 분야에서도 약 20조원 규모의 네이버–두나무 포괄적 주식교환 거래, 효성화학 네오켐 사업부 매각, 한화생명의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인수 자문 등 대형 거래를 수행하며 자문과 송무 양 축에서 실적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세종과 율촌, 화우의 가세로 올해 대형로펌들의 순위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종과 율촌이 광장, 태평장을 제치고 새로운 ‘빅3’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화우까지 포함해 ‘고성장 그룹’이 본격적으로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2020~2024년)까지의 매출을 놓고 보면 세종(64%)과 율촌(51%)은 광장(28%)과 태평양(18%)을 크게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왔다.
한 대형로펌 대표는 “견고했던 빅3의 장벽은 완전히 무너졌다”며 “올해를 기점으로 4개 로펌이 2위 자리를 두고 더욱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