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설립 70년 만에 처음으로 기업 인수를 결정하고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낙점했다. AI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 불공정·이상거래 탐지 등 시장 건전성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가상자산·토큰증권(STO) 등과의 결합으로 신사업 발굴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14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빠르면 이달 중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A사'와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A사를 거래소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이다. 인수금액은 50억~100억원 수준을 놓고 조율 중인 상황이다. 인수와 관련해 주무기관인 금융위원회와 협의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가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설립 이후 70년 만에 처음이다.
거래소는 지난해부터 AI 전문성과 금융데이터 이해도를 갖춘 국내 기술기업 35곳을 후보군으로 검토해 왔고, 최근 이 가운데 A사를 최종 선정했다. A사는 AI 기반 비정형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자연어처리(NLP)로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수집해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특수 가공·처리·분석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거래소가 설립 후 첫 인수 대상으로 AI 스타트업을 지목한 이유는 AI 활용이 자본시장에서 핵심 역량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부 조직과 인력으로는 기술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당장 불공정 거래 탐지 등 시장 건전성 확보에 AI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이상거래 인지와 관련해 "AI 기반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 통상 6개월이 걸리던 적발 및 심리기간을 3개월로 단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런던증권거래소(LSEG) 등 글로벌 선진 거래소에서는 AI를 활용한 정형·비정형 데이터 수집으로 시장 조작 패턴 적발, 이상 거래 징후 탐지 등 시장 감시 자동화를 병행하고 있다. 또 거래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주문 체결 오차를 줄이고, 매매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는데도 AI를 쓰고 있다.
거래소는 보유한 기업 공시, 재무제표, 뉴스 등을 통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현재 수준과 미래 추이까지 분류·나열하는 게 가능해지면 향후 '좀비기업 퇴출' 지표를 만드는 데에도 AI 분석 틀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매매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거래소 입장에서 현재의 인력 만으로 24시간 거래 체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AI 기반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려는 이유다. 한국거래소는 내년 말을 목표로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삼은 상태다.
지난해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출범으로 69년간 이어진 독점구조가 깨진 데 이어 미국 'NYSE 아카'와 '나스닥', LSEG와 홍콩거래소 등이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자 유치를 위해 올 하반기 24시간 거래를 추진하고 있는 등 '로컬(지역)거래소'의 위기감 속에서 나온 행보다.
때문에 거래소는 AI 데이터 분석 기업 인수를 통해 조직 전반에 이른바 'AI DNA'를 심는다는 방침이다. AI 데이터 처리 업체를 완전 자회사로 두고 기술 노하우를 축적한 뒤 장기적으로는 신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거래소는 수익모델 측면에서도 가상자산·토큰증권(STO)과 AI의 결합을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자산은 향후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자동 결제 등의 사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 이사장은 취임 이후 최근까지 거래소의 사업 경쟁력 확보와 미래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주요 과제로 제시해 왔다.
노정동/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