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자금금지법 개정'과 법인 자금 동결의 확장 [태평양의 미래금융]

입력 2026-01-14 07:00
수정 2026-01-14 09:11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대규모 불법 금융 네트워크에 대해 전례 없는 수준의 제재와 자산 동결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 투자 사기, 인신매매, 강제노동 등 중대 범죄가 결합된 조직적 범죄 집단이 복수의 법인과 금융계좌를 활용해 범죄 수익을 은닉·이전하는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기존의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내 법제에도 반영되어, 최근 「공중 등 협박목적 및 대량살상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테러자금금지법) 개정을 통해 금융거래 제한 및 자산 동결의 범위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다. 테러 관련 자금 일체 일시에 '동결 가능' 이번 개정의 핵심은 테러 관련자 개인에 대한 규제에 그치지 않고, 해당 개인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소유·지배하는 법인까지 금융거래 제한 및 자산 동결의 대상으로 명확히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테러자금금지법은 테러 행위의 유형으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 체포·감금·약취·유인 또는 인질 행위를 명시하고 있으며, 개정법은 이러한 행위와 관련된 자금이 법인이라는 외형을 통해 운용되는 경우까지 규제 범위에 포섭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테러 관련자가 법인을 전면에 내세워 금융거래를 지속하는 구조적 우회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다.

이러한 접근은 국제 금융제재 체계에서도 이미 확립된 원칙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운용하는 이른바 ‘50% Rule’ 이다. OFAC은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제재 대상자로 지정된 경우, 그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법인은 별도의 명시적 지정이 없더라도 동일한 제재 대상으로 간주한다. 즉, 제재의 적용 여부는 법인의 명칭이나 형식적 등재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 소유와 지배 구조에 의해 판단된다. 이는 금융기관의 고객확인 및 제재 스크리닝이 단순 명단 대조를 넘어, 실질적 소유자 분석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는 규칙이다.


국제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캄보디아 프린스 그룹 사례는 이러한 규제 논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린스 그룹 및 그 실질적 운영자와 관련하여 제기된 의혹의 중심에는 인신매매, 강제감금, 강제노동 등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 유형은 테러자금금지법이 규정하는 테러 행위의 구성요건과 실질적으로 중첩되며, 범죄 수익이 법인 구조를 통해 조직적으로 관리·이전되었다는 점에서 자금 동결 및 금융거래 제한 논의의 핵심 대상이 된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프린스 그룹 사례에서 바로 이러한 실질적 소유·지배 기준을 적용했다. 제재의 초점은 특정 개인의 범죄 혐의에 국한되지 않았고, 해당 개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다수의 법인과 그 금융계좌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OFAC 50% Rule이 단순한 이론적 기준이 아니라, 국제 금융제재 집행의 실무 원칙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금융기관 고객확인 방식..."재검토해야"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비교할 때, 최근 개정된 테러자금금지법은 국내에서도 유사한 규제 논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정 개인이 테러 행위 또는 이에 준하는 중대 범죄와 연관되어 있고, 그 개인이 법인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거나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해당 법인의 계좌 자금 역시 금융거래 제한 및 자산 동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국내 제도가 국제 제재 체계, 특히 OFAC의 실질적 소유자 중심 접근과 구조적으로 정합성을 갖추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금세탁방지 실무의 관점에서 보면, 이 변화는 금융기관의 고객확인 및 제재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법인 고객에 대한 확인은 더 이상 등기부상 주주나 명목상 임원 확인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제재 대상자 또는 고위험 개인이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거나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해외 법인이나 다층적 지배 구조를 가진 고객의 경우, OFAC 50% Rule, 국제 제재 동향, 테러자금금지법상 금융거래 제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강화된 고객확인의무가 필수적이다.



프린스 그룹 사례는 국내 금융기관에도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국내 제재 명단에 직접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거래를 허용하는 접근은, 국제 제재 위반 또는 테러자금금지법 위반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 실질적 소유와 지배를 기준으로 한 자금 동결 논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준법 기준이 되고 있다.

테러자금금지법 개정은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자금세탁과 중대 범죄 자금에 대응하는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에 OFAC 50% Rule과 같은 국제 기준을 함께 고려할 때, 법인이라는 외형 뒤에 숨은 위험 자금을 식별하고 차단하는 체계는 더욱 정교해질 수 있다. 프린스 그룹 사례는 이러한 변화가 실제 금융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향후 국내 금융시스템의 신뢰성과 국제적 정합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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