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호류지(法隆寺) 찾는 한·일 정상

입력 2026-01-13 17:18
수정 2026-01-14 00:31
“붓을 든 담징의 손끝이 무학같이 벽 앞에 나는가 하면, 진한 빛이 용의 초리같이 벽면을 스쳤다. 거침없는 선이여, 그 위엔 고구려 남아의 의연한 기상이 맺혔고 부드러운 선이여, 그 속엔 백제의 다사로운 꿈이 깃들인 속에 남국적인 정열이 어렸도다.”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의 한 장면이다. 고국의 국난에 차마 화필을 들지 못하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을지문덕 장군의 칼 아래 수양제의 백만대군이 가랑잎같이 부서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벽화를 완성한다는 내용이다. 예전 교토 여행 때 일부러 시간을 쪼개 나라를 찾아간 것도 이 소설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금당벽화는 담징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670년 호류지가 화재로 전소했다는 <일본서기> 기록도 있다. 설혹 담징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재건하며 새로 그려졌을 것이란 얘기다. 게다가 벽화는 1949년 다시 화마로 거의 소실됐다.

호류지는 일본의 고대국가 기틀을 만든 쇼토쿠 태자에 의해 607년 창건된 사찰이다. 일본의 1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등 국보와 중요 문화재 수백 점을 간직한 일본 아스카시대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그중 백제관음(구다라관음)이 이름부터 우리의 눈길을 끈다. 앙드레 말로가 “일본이 침몰해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걸 택하겠다”고 했다던 걸작이다. 1997년 일본과 프랑스가 국보 1점씩을 교환 전시할 때 선정됐을 정도다. 당시 프랑스가 보낸 건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백제에서 온 불상” “백제계 사람이 일본에서 만든 것” 등 여러 설이 있지만, 호류지 자체가 이미 고대 백제·고구려인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일본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오늘 나라가 고향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함께 호류지를 찾는다.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 오랜 교류의 역사도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