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공식 화폐는 무게 3.65g짜리 은화 데나리우스였다. 서기 100년 무렵만 해도 데나리우스의 은 비율은 90~100%에 달했다. 이 비율은 황제가 바뀔 때마다 지속해서 감소했다. 보유량은 충분치 않은데 돈 쓸 곳은 많다 보니 은근슬쩍 은 비중을 줄이는 꼼수를 쓴 것이다. 결국 서기 260년엔 은화의 은 비율이 2% 선까지 떨어졌다. 은화가 은화가 아니게 되자 로마제국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렸다. 해외에선 함량 높은 은화만 요구했고, 국민은 순도 높은 은화를 시장에 풀지 않고 집 안에 숨겼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국가 신인도 하락과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민간인이 악화의 확산을 부추긴 사례도 적잖다. 17세기 영국에선 ‘가장자리 깎기’(coin clipping)가 유행했다. 은화를 자루에 넣고 흔들어 미세한 은 조각을 떨어뜨리고 이를 모아 새 은화를 만드는 식이었다. 영국은 동전 옆면에 촘촘한 홈을 새겼다. 홈이 희미해진 동전은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은화 범죄를 단속했다.
금본위제와 은본위제가 사라진 현대에도 가짜 금·은이 존재한다. 화폐로 쓰이지 않을 뿐 귀금속 가격은 여전히 비싸서다. 가짜 금은 밀도가 금과 거의 동일한 텅스텐으로 제작하는 게 보통이다. 금괴 속을 텅스텐으로 채우고 겉에만 금을 입히면 대부분 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 2012년 미국 뉴욕 귀금속 제련소에서 10온스짜리 텅스텐 금괴가 발견된 사건이 유명하다. 은은 비슷한 밀도의 저가 금속이 없어 간단한 밀도 검사로 위조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가짜 은괴가 거의 없는 이유다. 니켈·구리 합금에 은을 도금한 주화나 장식품이 순은인 것처럼 유통되는 사례는 종종 있다.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일대에 텅스텐이 섞인 가짜 금이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위조 금은 중국 등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소액 금 현물 거래가 활발하고 금값도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돼 위조 금 밀수가 성행하기 쉬운 구조다. 종로 상인들이 가짜 금 소동에 따른 거래 위축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