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7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0위권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일본생산성본부가 OECD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OECD 회원국 가운데 31위였다. 33위인 전년에 비해 순위가 두 계단 올랐지만 2021년 순위를 회복한 데 그쳤다. 2018년 31위로 20위권에서 밀려난 이후 7년째 30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은 우리나라가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순차적으로 도입한 해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긴 근로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되 시간당 생산성을 높여 국가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근로시간만 줄었다. 2018년 1인당 연 1992시간이던 근로시간이 2024년 1865시간으로 127시간 감소했다. 219시간까지 벌어졌던 OECD 평균과의 격차도 같은 기간 119시간으로 대폭 줄었다.
근로시간은 선진국 평균에 가까워졌지만, 생산성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21년 OECD 평균의 77%까지 오른 이후 4년 연속 하락해 2024년 72.4%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이 하위권을 맴도는 이유로는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이 꼽힌다. OECD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대기업의 1인당 연간 생산성이 20만8430달러일 때 영세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5만1548달러, 10만4760달러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소·영세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 생산성 순위를 10위권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주52시간의 역설…근로시간 줄였더니 생산성 더 떨어졌다
노동생산성 OECD의 72%…7년째 30위권, '고비용·저효율' 구조 심화경기 화성에서 중소 규모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58)는 최근 노동조합에 생산량이 몰리는 달과 일감이 없는 달의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재량 근로제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원청회사 주문이 몰리는 달엔 주 52시간 규제에, 일감이 없는 달엔 인건비 부담에 발목을 잡히는 업종의 특성을 감안해 달라는 제안이었지만 노조는 “실질 임금 삭감과 노동 강도 강화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아르바이트를 투입해보기도 했지만 불량률이 문제였다. 김 대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공장 자동화가 답이지만 그래봤자 사람을 내보낼 수 없어 섣불리 투자를 결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 생산성은 31위인데 인건비는 9위
주 52시간 근로제가 처음 도입된 2018년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9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였다. 2024년 한국의 근로시간은 1865시간으로 그리스(1898시간) 이스라엘(1877시간)보다 짧아졌다.
근로시간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생산성은 선진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024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116.5달러인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2021년만 해도 미국의 55.2%였다. 지난 3년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3% 증가하는 동안 미국은 37% 급증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을 쫓아가지 못하지만 단위노동비용은 118.72달러로 OECD 8위였다. 일본은 100.46달러로 30위였다. 김 대표 같은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 한국 근로자는 경쟁국 근로자보다 일은 덜 하고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인건비는 비싼 셈이다.
경제 규모와 인구가 동시에 증가하는 고도성장기에는 풍부한 노동력과 긴 근로시간으로 선진국보다 부진한 생산성을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가 매년 10만 명 감소하고, 주 52시간제 정착과 워라밸 중시 풍조로 근로시간까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지금까지의 성장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주 4.5일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노동생산성이 근무시간에 비례함을 나타낸다”며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바꾸고, 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 대기업·中企 생산성 격차 OECD 2위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OECD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고질적인 저(低)생산성 때문이다. 대기업 생산성을 주로 반영하는 OECD 제조업 1인당 노동생산성 비교에서 한국은 2024년 연간 11만3656달러로 역대 최고인 13위였다. 독일(10만8592달러) 영국(10만6729달러)보다 높았다. 2018년 처음 추월한 일본(8만411달러, 20위)과의 격차는 3만달러 이상 벌어졌다.
중소기업 생산성은 대기업의 약 30%로 OECD 평균(50%)을 크게 밑돈다. OECD가 2021년 회원국의 기업 규모별 생산성 통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의 생산성은 20만8430달러로 20만달러를 넘었다. 영세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5만1548달러와 10만4760달러에 그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는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업 생산성도 제조업의 49.4%에 불과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2023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중소기업 생산성을 두 배 향상하고, 국내총생산(GDP)의 서비스업 비중을 현재 60%에서 70%로 높여야 2040년 1인당 GDP 7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효/이광식/곽용희/남정민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