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등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8억6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정식 전 현대오토에버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에서는 회계기준상 ‘가까운 가족’의 범위를 둘러싼 법원의 첫 판단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현복 부장판사)는 12일 배임수재,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 전 대표에게 검찰의 위법수집증거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KT그룹 계열사 KT클라우드가 차량용 클라우드 업체 스파크앤어소시에이츠(현 오픈클라우드랩) 지분 100%를 시세보다 비싸게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수사하던 중 서 전 대표의 배임수재 혐의를 포착했다. 스파크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동서인 박성빈 대표가 설립한 현대차 관계사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서 전 대표가 스파크 매도 대리인으로부터 계약 기간 보장 등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8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현대오토에버 협력업체 운영자들로부터도 거래상 편의 제공 등 청탁 대가로 약 7억8000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도 보고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확보한 증거 대부분이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사건과 무관한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해 증거로 삼은 점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로서는 임의제출 의사의 범위를 초과하고 관련성이 없는 공소사실에 관한 정보를 임의제출로 압수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새로운 압수영장을 발부받는 등 적법한 취득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박 대표가 가족관계로 ‘특수관계인’에 해당함에도 서 전 대표와 현대오토에버가 스파크와의 거래를 감사보고서 주석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혐의(외부감사법·자본시장법 위반)도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법인세법상 특수관계인과 회계기준상 특수관계자는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없고, 회계기준상 가까운 가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공시제도 마련 취지와 실질적 생활공동체 관계에 있는지에 따라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족하다”며 “정 회장과 박 대표를 실질적 영향력을 주고받는 가까운 가족 관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단은 회계기준상 ‘그 개인의 영향을 받거나 그 개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족’에서 ‘가까운 가족’의 기준을 법원이 처음 제시한 사례로 꼽힌다.
한편 이 매각에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보은' 성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현대차가 2021년 경영난에 빠진 구현모 전 KT 대표 형의 회사 에어플러그를 인수해준 데 대해 스파크 인수에 현대 일가가 수십억원의 프리미엄을 얹어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