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성 추정법'이 '노란봉투법'을 만났을 때

입력 2026-01-13 15:34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앞두고 노사관계의 관심이 해당 법과 관련 지침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의 핵심 목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이며, 노란봉투법으로 대표되는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규율은 어디까지나 간접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목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후속 입법의 후보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근로자성 추정법(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가짜 3.3’ 의심 사업장에 대한 기획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신고사건 처리에서 근로자성 판단을 담당할 ‘근로자성판단위원회’의 신설을 예고하였는데, 이는 입법에 앞서 행정감독의 수단을 정비하는 움직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2025. 3. 18.자 칼럼(노무제공자의 근로자성 판단…사용자가 입증하라고?)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Dynamex 판결과 AB5(Assembly Bill 5)로 대표되는 ‘ABC 검증요건(ABC test)’의 구조와 시사점?특히 중첩적 소극요건의 설계 및 입증책임의 전환?을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이를 본 떠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몇 가지 입법안(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소개하고, 이러한 입법안이 플랫폼 노동자 등 취약한 지위의 노무제공자에게 노동법적 보호의 문턱을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우리 법체계와의 구조적 차이 및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는 획일화의 위험을 지적하며 신중한 접근을 제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국회 논의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구체적 타당성’에 대한 공론화보다 ‘선명성’ 경쟁이 앞서는 가운데, 기대했던 정밀한 법기술적 설계 논의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이하에서는 후속 편 차원에서 만약 불가피하게 근로자성 추정법이 입법되어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쟁점을 몇 갈래로 나누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형사절차에서의 적용 배제가 필요하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위반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노무제공자를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용자에게 예외적으로 비(非)근로자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은 무죄추정 원칙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나아가 형사책임의 위험이 있는 사건에서 사용자는 진술을 거부할 자유가 있고, 그 침묵을 불이익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침묵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추정해 처벌로 이어진다면 이는 곧 진술거부권의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근로기준법 위반죄는 고의범이다. 성질상 근로계약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관계를 통해 노무를 수령하던 사용자가 비근로자성의 반증에 실패했더라도, 처벌을 위해서는 고의가 별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추정된 근로자성’을 바탕으로 고의가 추단될 수 있는지 의문이며, 만약 반증 실패만으로 처벌이 용이해진다면 사실상 고의까지 추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는 형사법 체계의 기본을 흔들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입법을 하더라도 적어도 형사절차에서는 근로자성 추정이 적용되지 않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일부 법안(2025. 12. 24. 김주영 의원안)이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을 적용 범위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문구만으로 형사절차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입법 문언 차원에서의 명시적 제외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직접적 계약관계’의 전제가 명시될 필요가 있다. 근로자성 추정법의 본래 취지는 위임·도급 등 계약 형식으로 노무를 제공하지만 실질적으로 종속된 관계에 있는 오분류(misclassification) 문제를 시정하는 데 있다. 그런데 다수 법안의 기본 문언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하되, 사용자가 다음 사항을 모두 입증한 경우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형태를 취한다. 이때 어디에서도 ‘위임·도급 등의 계약관계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대로라면 예컨대 하청업체 종사자가 근로자성 추정 규정에 기대어 원청에 대해 직접 근로자 지위를 주장할 경우, 법원이 ‘계약 상대방이 아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는 해석론이 제기될 수 있다. 더구나 곧 시행될 노란봉투법과 결합될 경우, 집단적 차원에서 원청에 대한 하청 종사자의 직접고용 요구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오분류 시정을 겨냥한 본래 입법취지를 벗어나 해석의 여지를 지나치게 넓히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추정 규정은 직접적 계약관계의 존재를 전제하도록 입법문구를 정교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근로자성 확대와 동시에 고용 유연성 보완입법을 병행해야 한다. 근로자성 추정은 실무상 근로자 인정 범위를 단기간에 크게 넓히는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형사처벌의 적용을 유지한 채 추정제도를 도입하면, 사용자로서는 형사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사실상 모든 노무제공 계약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유연한 인력운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사업기회들이 새로이 생겨나더라도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진입할 유인이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자리와 사업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근로계약만을 강제하면 오히려 일자리 축소만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진정으로 오분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근로자성 추정을 도입한다면, 그와 상응하는 유연성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매우 엄격한 해고제한과 경직적 근로시간 제도를 그대로 둔 채 근로자성만 확대하면, 합리적 사업자는 고용을 축소 내지 단념할 수밖에 없다. 입법자는 채용·운영·종료 전 과정에서의 합리적 유연성을 도모하는 보완입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며, 이에 관한 정치권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절실하다.

한편, ABC test와 같은 전환적 법리가 정말로 ‘대세’인지도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국에서도 한때 Control Test나 Economic Realities Test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방식이 적용되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보장 재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책적 필요 속에서 일부 주에서 ABC test가 도입·확대되었지만, 이후 그에 대한 예외 인정 내지 보완을 위한 입법도 계속되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AB5로 ABC test가 성문화되었지만, 정작 앱 기반 운송·배달 분야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주민발의안 역시 통과되었다. 연방 차원에서도 공정근로기준법(FLSA) 아래 독립계약자 판단 기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간소화된 2단계 판단구조 대신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Economic Realities Test로 무게 중심을 되돌리는 움직임이 확인된다. 이처럼 ‘본고장’에서도 ABC test가 지배적 기준으로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국내 다수 입법안이 ABC test의 일률적 도입만을 전제한다면, 결코 구체적 타당성 요구에 부합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 해석론을 전제로 한 접근처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방법이 훨씬 더 현실에 부합하는 접근법일 수 있다.

근로자성 추정법은 오분류 바로잡기라는 취지에서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를 좁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절차에까지 적용했을 때의 문제점, 계약관계 전제의 불명확성, 고용경직성 심화 등의 부작용을 무시한채 입법을 진행한다면 그 도구는 ‘과잉처방’으로 변질될 수 있다. 해외 동향이 보여주듯 단일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 맞는 정교한 규범 설계를 통해, 보호의 빈틈은 줄이고 혁신의 동력은 살리는 균형 잡힌 입법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