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전부 팔면서 기존 영위하던 사업을 접은 경우라면 상법상 ‘중요한 영업양수도’에 해당해 주주총회 특별결의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인수합병(M&A)업계에선 자회사 매각 시 관련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데다 하급심 판결도 엇갈린 터라 이번 대법원 판례를 계기로 실무 관행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반대주주 매수청구권 침해” 소송전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신발 및 신발 부품 제조업체인 A사의 주주 36명이 A사와 A사 대표이사, 사내이사 등을 상대로 약 59억8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민사 소송에서 피고들이 원고들에게 약 1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에 대한 상고를 지난해 10월 16일 기각했다. 2016년 소 제기 후 9년 만에, 2019년 5월 2심 선고 후 6년여 만에 최종 판결이 나왔다.
원고들은 A사 주식 1만1127주(약 5.42%)를 보유한 주주들이다. A사는 중국과 캄보디아에 자회사를 두고 있었는데, 2007년과 2011년에 차례로 자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이를 계기로 자회사들이 제조하던 자전거용 신발에 대한 A사의 중계 무역업도 종료됐다.
원고들은 A사의 자회사 지분 정리 과정에서 상법 374조가 규정하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와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등 절차가 지켜지지 않아 소수주주인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주장을 받아들여 A사의 자회사 주식 양도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원고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자회사 주식 양도에 관한 추인 결의를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제안했다. 또 자회사 매각을 기점으로 종료된 자전거용 신발 제조 사업을 원상 회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A사는 ‘주주 개인의 고충에 관한 사항’이자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으로, 상법 363조의 2에 따른 주주 제안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A사의 위법 행위로 자신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이 박탈됐고, 보유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이익을 상실했다며 재차 소송을 냈다. ◇법원, 회사 책임 인정…상법 개정안도대법원은 피고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 A사의 해외 자회사 매각 행위가 강행규정인 상법 374조에 따라 주주총회 특별결의 개최 의무가 부과되는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자회사 지분의 이전 거래에 대해서도 일정 조건하에서 같은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고 대법원이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조항이 적용되는 ‘영업양수도’에 자회사 매각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선 M&A업계에서 이견이 있었다. 법률적으로 자회사 지분은 회사의 영업을 구성하는 자산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실무적으로는 자산의 일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의무를 인정한 하급심 판례도 수차례 있었으나 실무 단계에선 90%가량의 회사가 이사회 결의까지만 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례를 기점으로 자회사 매각 계획이 있는 주식회사들은 절차 측면에서 한층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들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상법 개정이 추진되는 흐름과 부합하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모회사 영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회사 주식 양도에 대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회부돼 있기도 하다. 한 M&A 전문 변호사는 “주주들이 직접 손해배상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점점 늘어날 전망”이라며 “주주 제안을 거부할 경우 실질적, 절차적 요건 충족 여부를 꼼꼼히 검토해야 법적 리스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