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스라엘 항구 도시 하이파에서 여학생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한국인임을 안 그들은 반가워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한 학생이 사진을 찍으면서 한 말은 ‘원, 투, 쓰리’가 아니라 ‘하나, 둘, 셋’, 우리를 부르는 말은 ‘한국 아저씨들’이었다.
이스라엘 학생들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너무도 쉽게 나오는 것은 넷플릭스에서 최고의 한국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의 아저씨’ 영향이다. ‘국뽕’과 별개로 그들이 아저씨 호칭의 다중다의한 의미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아저씨뻘’이라고 할 때처럼 친족 용어도 되고, 낯선 성인 남성을 부르는 통칭도 된다. ‘나의 아저씨’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한국어 호칭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말도 찾기 힘들다. 영어에선 남자 형제는 ‘브러더’, 여자 자매는 ‘시스터’로 묶어 부르지만, 우리는 성별 상하에 따라 형·언니·동생·오빠·누나로 참 다양하다. 심지어 같은 동양 문화권인 일본도 형·오빠는 ‘오니상’, 언니·누나는 ‘오네상’으로 나뉜다. 가족 호칭이 연인 사이에도 쓰이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은 더 혼란을 느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에 처음 소개됐을 때 한석규가 여자 후배와 오랜만에 재회한 장면에서 후배가 한석규를 ‘오빠’라고 부른다. 일본어 자막은 ‘오니상’으로 나왔는데, 일본 관객에게는 자칫 둘이 친남매 간이라는 혼돈을 줄 수 있다. ‘센바이(선배)’로 번역해야겠지만, 그러면 ‘오빠’ 어감이 안 살아난다.
미국 의회에서 한 지한파 의원이 한국계 영 김 의원을 ‘누나’라고 불러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 시절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한 그는 연하남이 ‘누나’라고 했을 때 친밀감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단어 중 음식과 더불어 가장 많은 게 호칭이다. 오빠, 언니, 형, 누나, 막내, 선배, 아줌마 등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한국 문화를 자주 접하면 그 대체 불가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K 호칭이란 말도 생길지 모르겠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