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톱3 변압기 업체인 LS일렉트릭이 유럽 최대 민간 에너지기업 RWE에 초고압 변압기를 공급한다. LS일렉트릭이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계 3위 전력기기 시장인 유럽을 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력기기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고성능 변압기를 빨리 공급할 수 있는 한국 기업에 기회가 열린 것이다. 업계에선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국내 변압기 3사의 수출국 포트폴리오에 유럽이 추가된 만큼 향후 성장 곡선이 더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 뚫은 ‘변압기 강자’11일 업계에 따르면 LS일렉트릭은 최근 독일 RWE와 620억원 규모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맺고, 최종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RWE가 독일 서부에 짓는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연계 발전소에 2027년까지 400킬로볼트(㎸)급 제품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LS일렉트릭은 최근 증설을 마친 부산 공장에서 이 변압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동안 지멘스 등 현지 업체에서 조달하던 RWE가 LS일렉트릭으로 눈을 돌린 것은 갈수록 심화하는 초고압 변압기 품귀 현상 때문이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붐으로 전기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태양광·풍력단지 구축에 들어가서다. 초고압 변압기는 대규모 전력을 송전·변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전기 수요가 늘어나거나 새로운 발전시설 등을 세울 때마다 수요가 생긴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송·변전 인프라를 대규모로 깔고 있다. 유럽의회 입법조사처(EPRS)는 2040년까지 유럽 전력망 구축에 총 1조2000억유로(약 2038조원)가 필요한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인텔리전스는 이를 토대로 유럽 변압기 시장이 2025년 108억9000만달러(약 15조899억원)에서 2030년 151억2000만달러(약 22조원) 38.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이어 ‘새로운 기회’ 된 유럽LS일렉트릭의 합류로 국내 전력기기 3사 모두 유럽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 입성하게 됐다. 2010년 유럽에 진출한 효성중공업은 지난달에만 영국, 스웨덴, 스페인 등에서 2300억원이 넘는 초고압 전력기기를 수주했다. HD현대일렉트릭도 2024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영국, 폴란드 해상풍력 프로젝트 등에 변압기를 납품했다.
유럽은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높은 데다 업계 강자들이 포진한 탓에 국내 기업에 문턱이 높은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유럽뿐 아니라 미국 수요도 급증하면서 유럽 시장의 70%를 장악한 슈나이더, 지멘스, ABB, 이튼 등 ‘빅4’의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한국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전력기업은 빅4의 느린 서비스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며 “빠른 납기와 저렴한 가격, 촘촘한 애프터서비스로 무장한 한국 제품을 한번 경험한 만큼 주문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설비 증설과 네트워크 확장에 나섰다. LS일렉트릭은 지난달 약 1000억원을 들여 부산에 초고압 변압기 제2생산동을 증설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스위스와 헝가리 등 현지 연구소를 중심으로 ‘유럽 맞춤형’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네덜란드에 연구개발(R&D)센터를 열고 변압기를 넘어 차단기로 포트폴리오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