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작전은 완벽했다. 135분 만에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미군 함정으로 압송했다. 요새화된 관저를 장악하면서 쿠바 용병들을 제거했지만, 미군 사망자는 없었다. 이런 작전은 미군이 단연 으뜸이다. 자신의 실패들에서 배우면서 능력을 기른 덕분이다.
대표적인 실패는 1961년의 ‘피그스만 침공’이었다. 병력은 미군이 아니라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는 쿠바인이 다수였고, 훈련은 느슨했으며, 준비는 허술했다. 쿠바를 응징한다고 선언하는 대신 비밀 작전을 폈다. 침공 작전이 공개되자, 국제 여론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 움츠러든 케네디 대통령은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중도에 끊었다. 그래서 침공군 다수가 죽거나 생포됐다. 이 어이없는 작전으로 케네디는 ‘애송이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에 바탕을 두고 소비에트 러시아 지도자 흐루쇼프는 쿠바를 러시아의 미사일 기지로 만들려 했다. 핵전쟁의 위험으로 치달은 ‘쿠바 미사일 위기’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그 뒤로 크고 작은 실패들에서 배우면서, 미국 특공대는 완벽한 부대로 진화했다.
예상과 달리, 미국은 집권 세력에 베네수엘라의 통치를 맡겼다. 직접적 요인은 마두로 부부를 ‘마약 사범’으로 규정하고 자국 법정에 세워서 국제법 위반 문제를 우회하려는 의도다. 관저 지하 시설에서 코카인을 벽돌로 만드는 작업이 이뤄졌고 15t이나 되는 코카인이 있었으므로, 이런 방안은 일단 법적 논란을 줄일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에 초한전(超限戰)을 펴왔다. 이 전쟁에 포함된 비군사적 공격들 가운데엔 마약전(drug warfare)이 있다. 미국에서 재앙을 낳은 펜타닐의 유출을 억제해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시진핑 주석은 반응하지 않았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비호를 받은 마두로가 코카인을 미국에 반입한 것은 초한전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펼 만하다.
보다 근본적 이유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실패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2003년에 연합군이 일방적으로 이긴 뒤, 미군 군정기구는 이라크 군대를 고용하지 않았다. 원래는, 지상전이 끝나면, 그들을 군정기구가 고용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현지 지휘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교관 출신 군정 장관의 건의를 경솔하게 받아들였다. 졸지에 실업자들이 된 이라크군은 절망했고 미군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수니파 정권의 압제를 받아온 다수 시아파가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를 장악했다. 결국 미군은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해 물러났고, 이란이 이라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그 쓰디쓴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미국은 이번엔 마두로 없는 마두로 정권에 통치를 맡긴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변수는 마두로가 부정 선거로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2004년 이후 베네수엘라 선거에선 베네수엘라 기업인 스마트매틱(Smartmatic)의 전자투표기가 쓰였고, 그 뒤로 차베스와 마두로가 잇달아 당선됐다. 야당은 선거마다 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이 점을 중시한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면, 전체주의 정권의 민중주의로 피폐해진 베네수엘라에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잘 세워진 계획에 따라 목표들을 깔끔하게 이뤘다. 마약 공급원을 없애고, 중남미로 세력을 뻗쳐온 중국을 견제하고, 오랜 골칫거리 쿠바를 무너뜨릴 계기를 마련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번 사건에서 핵심적 요소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다. 그동안 중국은 싼값에 그 석유를 수입했고, 쿠바는 그 석유 덕분에 경제적 파탄을 피해왔다.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문득 높아졌다.
그래도 상황은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트럼프 자신이다. 공개된 성추문과 무리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터라, 그는 국제적 성과로 정치적 열세를 반전시키려 한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부차적 요소인 미국의 경제적 이득을 앞세운다. 이런 태도가 불러올 국제 여론의 악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