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장이 주춤한 사이 일본 유니클로가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엔을 돌파하며 글로벌 패션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가성비 브랜드를 넘어 실용성과 품질을 갖춘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에르메스와 구찌 매출을 수조원 차이로 따돌리는 ‘체급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11일 외신 및 패션업계에 따르면 유니클로 운영사인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2026회계연도 1분기(2025년 9~11월) 매출은 1조277억엔(약 9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4.8%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글로벌 명품의 대명사인 에르메스(약 6.5조원)와 구찌를 보유한 케링그룹(약 5.7조원)의 분기 매출을 3조원 이상 웃도는 기록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중국 경기 둔화와 소비 양극화로 실적 부진을 겪는 사이, 유니클로가 독보적인 실적을 내며 글로벌 패션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익성 또한 견고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09억엔(약 1.9조원)으로 전년 대비 33.9% 급증했다. 시장 컨센서스(1770억엔)를 20% 가까이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오카자키 다케시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국의 추가 관세 영향마저 흡수하며 예상치를 크게 넘어섰다”고 했다.
유니클로의 사상 최대 실적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성공으로 풀이된다.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 핵심 도시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고, 최대 해외 시장인 중국에서도 실적이 반등했다. 중국에서는 가을 상품 판매 호조와 더불어 중국 e커머스 공룡인 징둥닷컴과의 협업을 통해 신규 고객을 대거 유입시킨 것이 주효했다.
실제로 이번 1분기 유니클로의 해외 부문 매출은 6038억엔으로 전년 대비 20.3% 증가했다. 일본 유니클로 매출(2990억엔)의 두 배에 달한다. 이제는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매출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영업이익도 41.6% 증가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실적 보고서를 통해 “중국 이외에도 한국, 동남아시아, 호주, 북미, 유럽에서 모두 매출과 이익이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며 “특히 유럽에서는 영국 버밍엄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신규 도시 출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유니클로가 구축한 ‘가성비 럭셔리’ 전략이 고물가 시대의 새로운 대안이 됐다고 분석한다. 질 샌더, 르메르 등 정상급 디자이너와의 협업 라인은 ‘명품 감성을 10만원대에 소유한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며 소비자를 흡수했다. 내구성이 강한 ‘라이프웨어’ 철학도 한몫했다. 스웨트셔츠와 보온 이너웨어 수요(히트텍)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영향이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역대급 실적에 힘입어 연간 영업이익 목표치를 기존 6100억엔에서 6500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5년 연속 사상 최대 이익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 패스트리테일링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전일 대비 10.67% 급등한 6만2750엔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라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