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해 줘"…잠수탄 아이돌 연습생, 5000만원 '날벼락' [사장님 고충백서]

입력 2026-02-14 07:55
수정 2026-02-14 07:56

연예계 데뷔를 꿈꾸던 연습생이 소속사를 상대로 "(수익) 정산 자료를 주지 않았고 사실상 방치했다"며 전속 계약 해지를 주장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이돌 데뷔를 아직 하지 않았다면 회사에 정산 의무가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오히려 연습생의 무단이탈을 계약 위반으로 판단하고 소속사에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민사부는 최근 아이돌 연습생 B양이 소속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부존재확인 등 청구의 소를 기각했다. ○4년간의 연습, 그리고 7개월 만의 이탈10대인 B양은 2018년 연예기획사와 연습생 계약을 맺고 약 4년간 트레이닝을 받았다. 이후 2023년 2월 양측은 정식 데뷔를 앞두고 독점적 매니지먼트 권한을 부여하는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데뷔일로부터 7년 6개월간 유지되며, 1년 내 데뷔하지 못할 경우 계약 기간이 일부 조정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계약 체결 6개월 만인 2023년 8월 B양은 사전 고지 없이 연습실을 이탈한 뒤 복귀하지 않았다. B양은 우울증 진단을 이유로 휴식을 요청했고, 소속사는 휴식 기간을 줬다.

하지만 이후 소속사가 복귀 시점을 묻자 B양은 오히려 "소속사가 미성년자를 방치했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B양은 "전속계약 기간이 표준계약서 7년보다 장기인 7년 6개월이고, 일체의 정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미성년자만 거주하는 여성 청소년 숙소에 성인 관리인을 두지 않았으며, 특히 음성 녹음 기능이 있는 CCTV를 설치해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전문성 있는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으며 식비나 교통비를 제공 받지 못했고 교육 스케줄이 무리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되레 "무단이탈과 전속계약 위반으로 걸그룹 프로젝트가 중단·지연됐다"며 계약서에 따라 손해의 두배를 배상하라며 반소를 제기했다. ○"수익 없는데 정산 자료 어떻게 주나"…CCTV 설치 '정당'법원은 B양의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재판부는 "계약기간이 7년 이상으로 정하여진 경우에도 7년이 지나면 계약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계약 기간이 과도하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정산 자료 미제공에 대해선 "정산의무 및 정산자료 제공의무는 적어도 연예활동으로 인해 수입(매출)이 발생한 것을 전제로 한다"고 명시했다. B양은 아직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 신분으로 수익 자체가 없다는 취지다.

관리 소홀 및 인격권 침해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연습생 숙소는 (거주를) 강제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CCTV를 설치한 것은 외부인의 침입 방지 등 보안 및 연습생들의 안전 관리라는 정당한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CCTV는 거실이나 방, 화장실이 아닌 현관 주위에 설치돼 사생활에 큰 침해가 없었고, 관리자가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연습생들의 의견을 수용해 설치한 사실도 근거가 됐다. 이어 "일상적인 식비나 교통비에 대한 지원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며 소속사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의 교육이나 관리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소속사는 주 2회에서 5회 가량 보컬수업 및 안무수업을 진행했고, 정규 수업 외에도 인성, 예절, 교양 교육이나 평가무대를 진행한 점도 근거가 됐다. 법원은 "B양이 형식적이고 부실한 교육을 문제 삼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무리한 연습 일정을 제시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어 일관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법원은 역으로 B양의 무단이탈이 계약 파기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B양이 정당한 이유 없이 연락을 끊고 복귀 요청에 응하지 않은 점은 계약 해지 사유가 되므 소속사에 5359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그동안 B양에게 지출된 트레이닝 비용과 계약금 등을 바탕으로 산정된 금액의 2배에 해당한다.

이번 판결은 연습생과 소속사 간의 전속계약 분쟁에서 '무조건적인 약자 보호'보다는 계약서상 구체적인 의무 이행 여부를 엄격히 따졌다는 평가다. 윤중환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연습생 관리의 애로를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소속사가 교육·관리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면, 연습생 측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시도에 거액의 위약벌 등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