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패권 경쟁과 한국의 선택 [더 머니이스트-조평규의 중국 본색]

입력 2026-01-26 06:3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6년 신년사를 통해 중국이 나아갈 모습으로 '첨단 기술로 무장한 자립·자강의 강대한 나라'를 제시했습니다.

중국은 전통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후공정, 배터리, 전력전자,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에서도 미국과 대등하거나 일부 영역에서는 위협적인 경쟁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과 AI가 내재화된 가전·산업 제품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른바 '신질 생산력(新質生産力)'을 통해 기술 활용 범위와 효율을 극대화하며 국력 전반의 체질을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 부품 절대 금지’를 핵심으로 한 기술·안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초강력 제조 생태계, 세계 최대 내수 시장, 촘촘한 글로벌 공급망, 로봇 기반 자동화 혁신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중 간 양극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포지셔닝은 향후 수십 년 국가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21세기 게임 체인저는 'AI'20세기 미국 패권은 군사력, 동맹 네트워크, 금융 질서, 문화적 소프트파워가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핵과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군사망, '브레턴우즈 체제'와 달러 기축통화, 그리고 자유주의·민주주의를 세계 표준으로 만든 문화적 영향력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21세기 패권 경쟁의 중심에는 AI가 있습니다. 영어권 빅데이터, 개방형 인터넷, 민간 주도 혁신 구조 덕분에 AI 모델과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앞서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AI·로봇·휴머노이드 등 하드웨어와 응용 영역에서 '미친 혁신'이라 불릴 정도의 속도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국산 전면 배제 전략은 정치·안보적으로는 상징성이 크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한 성공 가능성은 작습니다. 중국산을 배제할 경우 미국 제조 원가는 30~50%까지 상승할 수 있고, 이는 물가와 산업 경쟁력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숙련된 제조 인력과 생산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리쇼어링(Reshoring)도 쉽지 않습니다.

중국은 희토류·리튬·배터리 소재 수출 통제와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공급망은 ‘완전한 디커플링’이 아니라, ‘선별적 차단’과 ‘동맹국 대체’라는 현실적 경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한국의 기회는 '간극'(間隙)에 있다미·중 간 패권 경쟁 사이에 생겨나는 간극이 한국에게는 기회입니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방산, 정밀 소재·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소재·부품·장비 강국입니다. 동시에 미국과는 동맹국이고, 중국과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나라입니다.

미국이 드론, 군수, 우주, AI 데이터센터 장비에서 중국산을 배제할 때, 중국보다 약간 비싸지만 신뢰할 만한 대체 공급자로서 한국은, 5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미국의 AI·방산·우주 산업의 '원부자재 창고'를 넘어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합리적 선택지가 되려면 독일과 일본이라는 강력한 경쟁국을 따돌릴 수 있는 산업 전략과 외교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산업 활력을 갉아먹고 있는 국내 현실 또한 반드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자율주행 택시, 휴머노이드, 드론, AI 서비스와 같은 첨단 산업은 유럽식 사전 규제가 아니라, 미국식 '선허용·후규제'에 가까운 방식으로 분당·여의도·세종 등에서 규제 특구를 지정해 과감한 실증과 상용화를 허용해야 합니다.팰런티어 모델을 경계하라미국 팰런티어와 같은 플랫폼 기업이 한국의 공장·조선소·반도체·방산 현장에서 숙련공의 노하우와 공정 지식을 데이터로 흡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전략적 경계가 필요합니다. 협력은 하되, 핵심 공정 레시피와 운영 알고리즘, 산업 데이터는 'K-제조 OS'와 한국형 로봇·산업용 AI 운영체제에 축적·통제되어야 합니다.

초지능(Superintelligent) 시대 경쟁의 본질은 설비나 제품이 아니라 운영체제와 플랫폼의 지배력입니다. 자체 OS·플랫폼·표준을 갖지 못하면 가치 사슬의 상단은 결국 해외로 귀속됩니다.

미·중 첨단 제조와 AI 패권 경쟁은 한국을 '틈바구니 약소국'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강력한 레버리지를 지닌 중견 강국으로 도약시킬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원부자재·군수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중국과는 전략적 선별 교역을 유지해야 합니다. 규제는 미국식으로, 데이터와 운영체제는 한국형으로 가져가는 이중 균형을 실현할 때 한국은 폭풍을 피하는 나라가 아니라, 파도를 타고 순항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 중국연달그룹 특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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