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는 결국 얼마나 많은 VIP 고객, 다시 말해 실제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컬렉터를 확보하고 있느냐의 싸움이다. 여기에 더해 장기적으로 잠재 고객을 얼마나 넓게 만들어갈 수 있느냐 역시 아트페어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아무리 화려한 기획과 중요한 담론을 내세워도 아트페어는 본질적으로 시장이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갤러리가 높은 부스비를 감수하며 반복적으로 참여할 이유는 없다. 아트페어 부스비 내다가 갤러리 문 닫겠다는 갤러리도 있을 지경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사’는 단순히 워크인 관람객을 상대로 한 단발성 판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술관, 기업 컬렉션, 재단, 그리고 주요 큐레이터와의 연결 역시 갤러리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가장 큰 축은 여전히 다수의 개인 컬렉터를 얼마나 잘 운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아트페어 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장사가 안돼도 한 번 나온 갤러리가 세 번까지는 나온다.”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한 갤러리는 판매가 부진하면 스스로를 돌아본다. 작품 선정이 적절했는지, 작가와 시장의 타이밍이 맞았는지 점검한다. 두 번째에도 성과가 없으면 아트페어 운영진에게 불만을 제기한다. VIP 초대가 충분했는지, 컬렉터 관련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세 번째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더 이상 항의는 없다. 대신 다음 해 신청서를 내지 않을 뿐이다. 아트페어와 갤러리는 그렇게 조용히 결별을 맞는다.
이 구조 속에서 아트페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분명하다. 작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멤버십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리즈의 ‘프리즈 91’ 멤버십이다. 이미 작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컬렉터라면 주최측이나 갤러리로부터 자연스럽게 VIP 초대를 받기 때문에 멤버십 가입이 필수는 아니다. 그러나 컬렉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컬렉터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멤버십은 중요한 연결 통로가 된다. VIP 프리뷰 입장,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토크, 레지던시 방문, 프라이빗 행사 참여 등은 단순한 멤버십 베네핏을 넘어 ‘컬렉터로서의 경험’을 직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키아프 역시 프리즈 91의 자극을 받아 멤버십 제도를 운영한다. 단순히 키아프와 프리즈 동시 관람이 가능한 입장권 제공을 넘어, 국내 컬렉터의 단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위도를 보인다. 주최측인 한국화랑협회에서 운영하는 키아프 외에도 화랑미술제(서울, 수원), 그리고 국내에 열리는 다른 관계가 있는 아트페어들의 초대권도 제공한다. 또한 주요 인사들의 강연, 스튜디오 투어, 사전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관람객을 장기적으로 컬렉터로 양성하고, 키아프를 축으로 단단한 국내 컬렉터 생태계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이다.
핵심은 분명하다. 멤버십은 곧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만드는 구조다. 일회성 방문객을 반복 방문자로, 반복 방문자를 관계를 맺는 고객으로 전환하는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멤버십이 ‘현재의 컬렉터’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장기적인 고객 확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키즈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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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바젤 현장을 방문해 본 이들이라면, 메인 VIP 동선 인근?특히 주요 스폰서인 UBS라운지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운영되는 키즈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컬렉터들이 편안하게 페어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자녀를 돌봐주는 키즈 카페 같은 서비스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역할도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컬렉터를 양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아트페어를 최초로 경험하는 예비 컬렉터이다.
키아프 역시 팬데믹 이전, 미술 유튜버이자 작가, 그리고 아동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아트 메신저’ 이소영이 이끄는 빅피쉬와 협업해 키즈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당시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미 부모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던 프로그램이었고, 비교적 부담 없는 비용으로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트페어 관람보다 키즈 프로그램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가족도 있을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키아프에서는 홀 외부에 키즈존을 만들었기 때문에 입장권 없이도 키즈 프로그램만 예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당연히 키아프 방문객만 이용할 줄 알았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나중에 아트오앤오에서 키즈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는 홀 내부에 키즈존을 조성했다. 이때는 당연히 부모님이 입장권을 끊고 동반 입장할 줄 알았는데, 아이만 입장권과 키즈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키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사가 입구에 가서 아이를 픽업해서 입장해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항상 예측 못했던 일이 생긴다.
당시 빅피쉬가 운영했던 키즈 프로그램의 내용은 단순한 만들기 체험을 넘어섰다. 아이들은 아트페어 현장에서 실제 작품 이미지를 보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경험을 했다. 이는 미술학원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기능 중심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체험이었다.
키아프와 아트오앤오를 비롯해 여러 아트페어에서 키즈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아트 메신저 이소영은, 프로그램 이후 벌어진 한 장면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키즈 프로그램에서 마음에 들어 했던 갤러리 부스를 부모와 다시 찾아가, 그 작품을 아이의 ‘첫 컬렉션’으로 소장하게 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은 작품을 어렵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이 왜 이 작품이 좋은지를 나름의 언어로 설명한다”고 전했다.
이 경험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경험?즉 컬렉터의 시선에 가까운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키즈 프로그램은 단순히 아이를 위한 부대행사가 아니라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한 세대 안에서 공유되는 출발점이 된다. 아트페어가 잠재적이고 장기적인 컬렉터를 육성하고자 한다면, 키즈 프로그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이는 당장의 매출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10년, 20년 후 시장을 떠받칠 관객과 컬렉터를 만드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배경도 있다. 아트페어의 수는 이미 포화 상태다.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2월 중동에서 새롭게 열리는 아트바젤 카타르를 시작으로, 프리즈 LA, 3월 아트바젤 홍콩, 4월 화랑미술제와 아트오앤오, BAMA, 5월 프리즈 뉴욕과 아트부산, 신생아트페어인 하이브, 6월 아트바젤 바젤까지 상반기 내내 국내외에서 아트페어가 쉼 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국내에도 광주·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해이다. 소규모의 호텔아트페어나 미술관·갤러리의 오프닝까지 더해지면 컬렉터들의 일정은 늘 과부하 상태다.
이제 아트페어는 문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오랜 관계로 함께 갈 것인가가 성패를 가른다. 멤버십 프로그램은 현재의 컬렉터와의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만드는 장치이고, 키즈 프로그램은 세대를 연결해가며 미래의 컬렉터를 양성하는 장치다.
아트페어가 단기 성과에만 집중한다면, 시장은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관계와 경험을 설계하는 데 성공한 아트페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한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멤버십과 키즈 프로그램이 지금 아트페어 운영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박준수 기획자